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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19. 2019

별 - 황홀한 별의 타박상이여

당신에게 몽골 # 8


하늘초원의 모닥불


별에 관한 몽골의 설화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늘에는 엄청나게 넓은 초원이 있다. 그곳에도 양떼가 있고, 그를 지키는 목동이 있다. 밤이 되면 하늘 초원의 목동은 모닥불을 피운다. 그리고 잠을 잘 때 몸에 덮는 가죽 덮개를 펼친다. 오래된 가죽 덮개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데, 그 사이로 모닥불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별빛이라고 믿었다.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까.

광활한 태허의 천궁에 보석처럼 박힌 별들의 수는 ‘못 헤아릴 수’ 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바라보는 별은 어떠한가. 쇠약한 별빛은 고사하고, 24시간 야식 배달이니 찜질방의 네온사인 불빛에 시들어 버린다. 그마저 즐비하니 가로선 빌딩들에 가로막혀 좌면우고하기 바빠, 고개를 뒤로 꺾고 손바닥만하게 열린 밤하늘을 치켜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몽골의 하늘은 180도 반구로 펼쳐진다. 상상해 보라.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진 반구의 하늘에 가득 들어찬 별들의 무리를. 발이 닿는 땅 끝부터 반짝이는 별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막힌다.




엉기히드 부근에서 만난 별들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반구의 하늘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그야말로 검은 공간보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 많았다. 몽골의 설화에 따르자면, 저 하늘 초원의 목동이 덮고 자는 가죽 덮개는 너무 해지거나 좀이 슬어서 온통 구멍투성이임이 틀림없었다. 그 많은 별들이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의 시점부터 시작하여 반구를 채우고 도처에서 별똥별이 폭죽처럼 동시다발로 터지느라 미처 탄성을 내지를 틈조차 얻지 못했다. 초원의 여름밤은 구름 한 점 없이 공활하여, 진주를 빻은 듯한 별들을 검은 벨벳 위에 흩뿌렸다.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별들을 보자니,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하는 되어먹지 않은 노래를 부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느 게 누구 것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손을 벋으면 바로 닿을 듯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은 조금만 까치발이라도 디뎠다가는 쟁그랑 소리를 내며 별에 머리를 부딪칠 듯했다. 가만히 벌판에 누워 바라보자면, 온몸으로 사정없이 떨어지는 별똥들에 몸은 이내 전신 타박상을 입고, 가슴에는 영 치유될 수 없는 내상을 입고 마는 것이다.    


유럽의 여행자들은 오직 여름 한철, 그 별들을 만나기 위해 불원천리 몽골을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턱도 없는 소리이다. 일주일도 길어서, 사정사정 졸라서 오박육일로 얻어낸 휴가로 최대한 많은 걸 보아야 하고, 쇼핑도 해야 하고, 블로그에 올릴 사진도 찍고, 별미도 먹어 봐야 하고, 추억도 만들어야 하고, 기회가 닿으면 운명적인 사랑도 만나야 하느라, 여행을 와서도 새벽부터 체크 아우트! 가이드에게 온종일 끌려다니다 보면 이건 여행이 아니라 유격훈련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로지 별만 보고 가라면 무어라 할까. 그러나 몽골의 별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 말도 안 되는 말이 말이 되고 만다.

그러면 아무나, 아무 때나 그런 별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 충격적인 별들을 보고 돌아와, 만나는 사람마다 입이 찢어지도록 몽골의 밤과 초원의 별들을 선전해댔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별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다음에 몇 차례나 몽골을 이리저리 뒤지고 다니고, 그때마다 엉기 히드에서 밤을 보냈지만 그날 밤과 같은 별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별들은 마냥 밤하늘에 박혀 있는 반짝이 단추가 아니었다. 그것은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처럼, 이슬 맺힌 거미줄을 유유히 벗어나는 바람처럼,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몽골의 별은 아무나 만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천년의 인연이 잇닿는 순간의 공간에서 스치듯 만나게 되는 경지인지도 몰랐다. 부디 그대에게 그러한 하늘의 도움과 인연이 함께 하기를 빌며, 내가 만난 별들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노력을 적어 본다.

우선 달이 잠드는 그믐을 끼고 여행 일정을 잡아 보자. 우기를 피해 조금 이른 6월말이나, 조금 늦은 8월 중순경으로 잡아 보자. 가로막는 나무나 바위가 없는 벌판이나, 손만 벋으면 별에 닿을 수 있는 산정에서 천막을 쳐 보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돈트고비나 알타이 산정, 아르츠보그딘 산정이나 테비쉬 울 가는 대평원에서의 야영을 추천한다.

지나가는 구름이 하늘을 어른거리면 그것은 전생의 업보로 여기라. 내게 항의해 보아야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나도 신이 아니니까. 구름은 어디에서 오나, 구름은 쓸데없이 잠도 안자고 한밤중에 왜 돌아다니는가. 내게 묻지 말라.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살겠는가.


별을 좀 더 깊이 보려면, 별자리나 별에 관한 신화 책들을 몇 권 읽고 가기 바란다. 아는 게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밖에 없으며, 책 읽을 틈도 없다면 별 귀신을 한 마리 데려가라. 천체를 전공한 과학 선생님이면 가장 좋다.

본격적으로 별에 미친 사람이라면, 천체 동호회와 함께 몽골을 찾기 바란다.

여행 중에 만난 별 사진 동호회들의 열정은 거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 잠도 안 자고, 술도 안 마시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카메라와 아파트 한 채는 날리고도 남았을 온갖 촬영장비들을 짊어지고 몽골을 찾았다. 행여 그 난치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싶어 몇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았다. 하늘에 비추면 파워레인저 특공대의 광선 검 같은 불빛이 발사되는 레이저 손전등도 있더라. 달나라에서 소변 보던 토끼가 화들짝 놀랄 만큼 멀리 날아가는 그 손전등의 불빛들이 밤하늘을 헤집으며 이리저리 큰곰이니, 전갈이니 하는 별자리들을 초록불빛으로 이어나가는 장면은 거의 강남 스타강사의 명품 강의를 방불할 정도였다.

그것도 귀찮으면 천원 백화점에서 파는 은박지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밤하늘을 배회하는 별들을 보라. 심심하면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이런 노래를 잘하는 노래 귀신 한 마리를 데려가 곁에 앉혀라. 그도 없으면 엠피쓰리 귀에 꽂고 누우라. 밤하늘의 별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상아귀고리가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라. 잠이 오면 그대로 잠들라. 잠든 그대의 곁에 별이 내려와 누워 밤새 들려주는 저 먼 하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여행하다보면 길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거나, 지체를 하다가 늦어져 밤길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지리에 익숙한 운전사들도 불빛 하나 없으며, 나무 하나 선 것이 없는 벌판에서 길을 찾기가 어렵다. 그럴 때 운전사들을 안내하는 것은 별자리이다. 별을 보고 길을 찾는 것도 몽골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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