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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20. 2019

보우 - 몽골의 샤먼

당신에게 몽골 #9

하늘을 믿는 민족


샤먼의 본산이 몽골로 알려져 있다.

몽골어로 ‘보우(Buu)’라 불리는 샤먼은 흉노 시대 이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몽골 전역에 퍼져 있다. 주로 조상신을 불러 빙의하는 샤먼의 의식은 우리의 무속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남자 보우를 자이랑(Zairan)이라 부르고, 여자 보우를 오뜨강(Udgan)이라고 부른다.

예부터 몽골 부족은 ‘하늘(Tenger)을 섬기는 민족’이라고 불려왔다. 몽골 샤먼이 섬기는 하늘은 주로 ‘할아버지’나 ‘할머니’로 불리는데, 그들이 섬기는 하늘의 신은 55가지의 ‘하얀 하늘’과 44가지의 ‘검은 하늘’로 나뉜다.

‘하얀 하늘’은 소원을 들어주는 착한 신이고, ‘검은 하늘’은 악령을 쫓거나 저주와 병마를 주관하는 나쁜 힘을 다스리는 신으로 구별된다. 대체로 남성을 ‘검은 사람’이라 하고, 여성을 ‘하얀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과 연관된 믿음이 아닌가 싶다.

지역이나 부족에 따라 섬기는 신의 종류와 의식에 차이가 나는데, 대체로 하늘이나, 물, 땅의 자연을 신령화하여 섬긴다. 브리야트족이나 내몽골 북쪽 지역의 샤먼들이 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빙의하는 형태라면, 오랑하이족은 원귀나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탈혼의 형태에 가깝다.


대체로 짐승들의 이빨이나 발톱, 가죽, 깃털 등으로 장식한 복식에 눈이 그려진 모자를 쓰는데, 모자의 앞면에는 가느다란 끈 장식이 늘어져 있어 얼굴이 내보이지 않는 가면에 가깝다. 무구로는 북과 ‘타야크트’라 불리는 지팡이, 호르트라 불리는 악기가 있다. ‘헹그렉트’라 불리는 북은 천마를 상징하고, 북채는 채찍을 상징한다. 한쪽에만 가죽을 씌운 북은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원시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북은 하늘의 신에게 서원을 전달하는 도구로 털로 감싼 북채로 두드리며 주문을 왼다. ‘호르트’는 입에 물고 튕겨서 소리를 내는 무구이다.

몽골 샤먼의 본산은 몽골 북부의 홉스굴 주변으로 알려져 있다. 다르하트족이나 차탕족의 샤먼이 용하다고 소문이 났는데, 울란바타르에는 이를 사칭하는 가짜 샤먼이 나돌 정도라 한다. 특히 스탈린 학정 시기에는 샤먼이 많았던 울란울의 주민들이 많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영험한 샤먼이 되려면 13번의 차나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보통 4-5일이 걸리는 차나르는 이삼 년 간격으로 치러진다.


울란바타르의 예술극장에서 전통적인 ‘샤먼 춤’을 보았는데, 혼자서 샤먼의 복식을 갖추고 추는 동작은 단조로우면서도 장엄하였다. 그 춤과 복식은 인디언 샤먼과 너무 흡사하여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그 공연을 보고 싶어 다시 찾아 갔더니 볼 수 없었다.

다른 공연은 변함이 없었는데 '샤먼 춤‘만 빠졌다. 그곳의 급여가 시원찮아 한국의 몽골문화촌의 공연단으로 갔다고 한다. 다른 공연장에서 하는 ’샤먼 춤‘을 보았으나, 여러 명의 샤먼이 나와 원무의 형식으로 화려한 동작으로 재구성한 현대화된 춤이라 실망하였다.



홍그린 엘스에서 바양자크 쪽으로 이동하다가 우연히 샤먼을 만난 적이 있다. 허허벌판에 양떼도 없는 게르 한 채가 눈에 띄었다. 한 눈에도 옹색해 뵈는 살림이었다. 잠시 쉬어 가려던 게르 안에서 낯선 물건이 눈에 띄었다. 북과 무구(巫具)들이었다. 알고 보니, 채 서른이 안되어 보이는 바깥주인이 샤먼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세습무라고 했다. 겉보기에는 여느 몽골 남자나 다름없어 뵈는 그이가 샤먼이라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여행의 안전을 기원해달라는 청에 그이는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한 번도 외국인 앞에서 의식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어렵게 청을 들어주어 샤먼의 제의를 구경하게 되었다.


복식을 갖춰 입는데 부인이 입혀주다시피 거들었다. 복식을 갖추고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모자를 쓴 남자 박수 자이랑(Zairan)은 북을 앞에 놓고 치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박자이지만 초혼의 과정으로 보였다. 북소리에 맞춰 주문을 외우더니 이상한 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자이랑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샤먼들이 접신한 뒤에 내어 놓는 말들은 현대 몽골말과 다른 고문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보통 사람은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마침 동행했던 몽골 가이드가 통역을 해 주었다. 그녀의 사촌 누이가 보우라 그런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다.

초코파이와 담배, 술 들을 공물로 바친 여행자들이 한 사람씩 절을 올리고 덕담을 받았다. 의식 중에는 외국인이 말을 하면 샤먼이 모신 ‘할아버지’가 낯선 언어에 놀라서 떠난다고 했다.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몸에 모셨다는 젊은 샤먼은 끝없이 담배를 피우며 노인의 목소리로 이따금 웃어가며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며느리가 따라주는 술과 차를 마시고, 손가락에 끼워주는 담배도 맛있게 피웠다.

근 한 시간가량 이어진 의식은 ‘할아버지’께서 낯선 외국 손님들을 반갑게 여겨 남은 여행의 안전을 빌어 주겠다는 대답을 듣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이상한 휘파람 소리 같은 걸 내고 보우의 몸에서 ‘할아버지’가 빠져나가고 젊은 샤먼은 힘이 빠진 듯 잠시 앉아 있다가 처음처럼 북을 치고 마쳤다. 의식 중에는 촬영을 허락하지 않아 담아둘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그날 개울 길을 가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과 소나기를 맞았는데 무사히 차가 빠지지 않았으며, 잔뜩 흐린 날씨에 산꼭대기에서 천막을 치던 그 날 밤에도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야영을 마칠 수 있었다. 담배를 맛있게 피우던 ‘할아버지’의 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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