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극을 썼다. 6월부터 천천히 준비하다 공모전 마감을 앞두고 부랴부랴 완성해, 첫 번째 극을 썼던 1년 전과 비슷한 패턴으로 글쓰기가 이뤄졌다. 그런 작업방식이란 자체로 후회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에 쫓기듯이 원고를 써 내려가면서 마감이 아니고서야 글을 쓰지 않게 된 습성을 원망도 했다. 하지만 제출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후회도 반성도 없이 그저 후련하기만 했다. 무엇을 원동력으로 했던, 두 번째 문 앞에 서게 됐다는 사실을 하루쯤 온전히 기뻐하면서 보냈다.
깨끗한 빈 화면에 뭔가를 채워 넣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가장 괴로울 때는 확신에 차 "된다"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뼈대를 세우고 살을 찌우고 나니 형편없었다는 걸 알 때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런저런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 너무 근사하지 않을까? 분명 그랬는데 활자로 옮겨진 생각은 열에 아홉은 너무나 빈약하며 구렸다..
분명 상상만으로는 진짜 끝내줬는데. 이상하다. 뭐가 문제지. 따져 물을 것도 없이 언제나 문제는 막연함이고, 어렴풋한 가능성에도 쉽게 확신에 차고 마는 나의 안일함이라는 것.. 운전 배울 적 선생님이 자만하면 실수하는 타입이라며 나를 꿰뚫어 본 말씀이 여전히 유효하며 정확한 셈이다.
그러니까 꺼내야지만, 종이 위에 적어 내려가야지만 분명해지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말로 꺼내지 않은 사랑고백이라는 게 쉽게 오해를 사듯이, 모니터 위에 적히지 않은 글이란 내 안에서 멋대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에. 돌아보면 자꾸만 뭔가를 쓰기가 어려웠던 건, 망설여졌던 건 그 오해를 확인하기가 무서워서 지쳐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직 내가 이 정도라는 걸 인정하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자만하면 실수하는 타입이니까.. 지금은 겸손하게 배우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할 때. 거절을 예견하고도 구애하는 마음처럼, 꺼내야만 분명해지는 말들을 기꺼이 꺼내는 용기를 차근차근 몸에 마음에 익혀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