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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19. 2024

미안해 근데 안 미안해

운전 습관이 상냥하진 않다. 노란불에 브레이크보다 액셀을 밟고, 과속방지턱 앞에서 속도를 잘 안 줄인다. 바쁠 땐 서야 하는 줄을 한참 앞지르다가 깜빡이를 켜자마자 급습한다. T맵 운전점수가 100점과 99점을 왔다 갔다 하는 애인은 며칠 전 칼국수를 먹고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멀미를 했다. 그 정도라고? 어쨌든 미안. 탐탁지 않은 사과마저도 진심은 아니었다. 내 운전이 어때서, 이젠 사고도 안 내는데.


난폭 운전이란 지도 운전을 개같이 하면서 남의 개 같은 운전엔 관대하지 못한 운전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운전 역시 난폭의 경계를 오간다. (난폭 운전은 아니야..) 아슬아슬한 노란불에 액셀을 밟는 차가 보이면 혀를 차고, 긴 줄에 끼어들려는 차가 얄미워 앞차에 바짝 붙어서 간다. 속도가 느린 차가 내 앞길을 막으면 복장이 터져서 견디질 못하겠다. 아주 기어가라.. 짜증이 잔뜩 섞인 투로 푸념하다 옆에 탄 모범적인 남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다. 아, 나도 엄마가 운전하면서 난폭해지는 거 싫었는데, 지금 내가 얼마나 미워 보일까.. 아니 근데 이 길을 저 속도로 가는 게 말이 돼? 미안해 근데 안 미안해!


모든 내 사정에는 이유가 있고 남의 사정에는 이유가 없어 보인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이번 여름은 불쾌지수가 치솟아, 운전을 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불쑥불쑥 사람들에게 짜증이 향했다. 경주마 같은 구석이 있는 내가, 차가 다니는 골목에선 "사람이 먼저지!" 하며 발을 뻗어 달려오던 차를 세우고, 가로질러 오는 사람들 앞에 걸음을 멈추는 법 없이 먼저 가고야 마는 건 까맣게 잊고선 말이다. 내가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겨 옆을 살펴볼 틈이 없는 것처럼 남들도 그럴 때가 있는 건데, 그런 사정들 헤아리며 살자는 다짐은 내 맘 같지 않은 날씨와 도로 사정, 크고 작은 다른 이유들 앞에서 쉽게 깨어진다.


애인에게까지 이런 뾰족함이 뻗쳐 다툼으로 번질 때 먼저 사과를 하는 건 꼭 애인이다. 깜빡이 없는 끼어들기처럼 명백한 내 잘못으로 시작된 싸움에서도 말이다. 잘못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로 구분될 수 없는 일이 세상엔 많고, 잘못하지 않아도 사과하는 게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때가 있다고 애인은 말하곤 했다. 잘못해도 미안해하지 않고, 남의 잘못에는 손가락질하는 내 마음은 그런 말들 앞에서 부끄러워지곤 한다. 이제 진짜 사과도 먼저 하고 운전도 상냥하게 할 거라고, 또 깨지고 말 다짐이라 할지라도 자꾸만 자꾸만 내 속에 새겨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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