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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25. 2024

Endless Summer

올해로 초등학생이 된 대추는 귀여운 아기보단 멋진 언니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 하는 어엿한 어린이가 됐다. 친한 친구와 불편한 친구가 나뉘고, 친구와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고, 엄마나 아빠보단 윗학년 언니오빠들 앞에서 더 위축되면서, 대추는 우리가 모르는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자기의 핸드폰이 생기면서는 대추가 커가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만 같다. 엄마로서 이모로서 그런 대추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안녕을 바랄 뿐인 우리는 대추가 새롭게 구사하는 조숙한 말들, 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쁜 말들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졸인다.


아무리 빠르게 자라고 많은 것을 배웠다 한들 8살짜리는 아직 아이다. 대추가 놀이방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모처럼 가족 식사를 위해 잡은 식당엔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이 한쪽에 마련돼 있었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미끄럼틀이나 해먹 같은 게 놓여있었는데, 그 시설이라는 게 대추의 키를 조금 넘는 정도여서 초1짜리가 놀기엔 영 비좁아 보였다. 그런데도 대추는 거기 쏙 들어가 가져온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른들이 분주하게 식사하는 동안에도 같이 놀 친구를 기다리는 듯 유리창 밖을 힐끔거리면서.


얼마 안 가 자기보다 조금 작은 여자아이 두 명이 손을 잡고 들어오자 대추는 본격적으로 걔네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자매처럼 보이는 두 아이가 둘만의 얼음땡 놀이를 하는 걸 흥미진진한 눈으로 쳐다보다, 잠깐 뜨는 시간을 틈타 다가가 용감하게 말을 건 거였다. "나랑 같이 놀래?" 참으로 단순하고도 명료한 그 말이 명랑하게 울리는 순간 내 눈엔 대추가 정말로 멋진 언니처럼 보였다. 아무런 재고 따짐이 없는 단순한 우정을 목격한 것이 또한 오랜만이라 간지러운 기분도 들었다. "그래!" 자매의 씩씩한 대답으로 세 어린이의 얼음땡이 시작됐다. 자그마한 몸으로도 엎어지면 코 닿을 듯한 방에서, 식당이 떠나가도록 지르는 비명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떠들썩하게 새어 나왔다.


지루한 어른들과 밥을 먹을 땐 유튜브를 보여달라며 떼를 쓰던 대추가, 저만한 아이들과 비좁을지언정 뛰어놀 공간이 생기자 기꺼이 땀을 흘리며 뛰어논다. 근래 본 가장 어린이다운 모습으로 천진하게 얼음땡을 하는 대추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아이다움을 앗아가는 것이 기술의 발전인지 나쁜 쪽으로 치열해지는 사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놀이터에서 놀아줬던 언니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코흘리개랑 노는 거 시시할 텐데도 기꺼이 껴줬었는데. 그 언니들의 애들은 내가 그랬듯 공평한 놀이터에서 별 다른 걱정 없이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을까. 내 안에 반짝이는 추억으로 남은 그 여름처럼, 모든 어린이의 여름도 반짝이는 멋진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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