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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Sep 02. 2024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주말마다 브런치를 쓴다거나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대본을 쓰고 있다는 건 직장 동료에겐 말하기 어려운 주제다. 어떤 동료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종일 카톡을 하며 동료애를 넘어선 우정을 나누는 사이인데도 그렇다. 처음엔 단지 안 물어보니까 안 말했는데 이런 날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소극적인 거짓말까지 한다. "주말에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런 질문을 받는 월요일이 유난히 피곤한 건 일요일 밤마다 브런치를 쓰 새벽에 잠들기 때문인데도, 토요일엔 약속이 있더라도 틈틈이 노트북을 꺼내 대본을 쓰는데도 말이다.


토요일에는 대본 썼고 일요일에는 브런치 썼어.. 좀 유난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무슨 쓰냐고, 관두는 거냐고, 브런치 계정은 뭐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한두 사람이면 몰라도 동네방네 떠들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여기엔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지만 기꺼이 말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행간마다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내가 사랑하는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해서 말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가벼운 농담처럼 말하게 하는 법이고, 그렇게 바보처럼 구는 내 모습을 보는 데는 정말이지 이골이 나있다. 그냥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말지!


비밀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여러 사람으로 쪼개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까지 감추고 어디까지 말하는가에 따라 내가 끝없이 증식하는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서로 다른 '나' 중에 진짜는 뭘까 덧없는 고민을 할 때도 있었다. 이게 덧없다고 쓰는 이유는 '진짜 나'라는 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를 울고 웃게 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에도, 울고 웃는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도 내가 있다. 혹은 그 마음 중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남들을 오해하듯이 나를 오해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모든 걸 인정하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모든 문장이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만큼 탐구하고 탐구하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걸 수도 있다.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나의 바보 같은 모습까지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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