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자>_노래/작사/작곡 루시드 폴
_ <걸어가자>
노래/작사/작곡 루시드 폴
여자는 두 손바닥을 맞대어본다.
길이가 제각각인 손금들이 천천히 겹쳐진다.
짧은 순간, 여자는 운명이 어느 방향으로든 조금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그 손과 손 사이에 갇힌 온기는 둥글게 모아져 점점 더 따뜻해진다.
그 온기는 혈류를 타고, 물결처럼 심장으로 흘러간다.
이윽고 여자는 손가락 열 개를 모두 구부려 왼손과 오른손이
떨어지지 못하도록, 서로가 서로를 잘 붙들도록 묶어둔다.
기도. 그 손안에 소리 없이 작은 기도가 자라난다.
깍지 끼어진 손. 내가 나를 놓치지 않고 데려가고픈
바람은 기도를 불러왔다.
여자는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세요.’
이 물음의 대답은 언젠가 들려올 것이다. 여자는 믿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올 때,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으므로.
고요한 시간이 한참 흘러간 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툭툭 털어내며
어느새 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절실함.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여자는 그곳을 나선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여자는 아마도 몇 번쯤
걷고 있는 이곳이 어딘가 두리번거려야 했다.
요즘 들어 자주 제 두 발이 그녀를 이름 모를 곳으로
이끌어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근래 여자는 자주 길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자꾸 희미해지는 기분.
사람도 일도, 모든 관계들도 끝없이 버거웠다.
예고 없이 생기는 상처와 관계의 종말에 여자는 많이 지쳐 있었다.
이럴 바엔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먹먹한 기분은 그녀를 내내 잠 못 들게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퇴근길에 늘 그곳에 들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일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내내 대답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한 발 또 한 발.
힘없는 걸음을 걷던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선다.
노래가 말을 걸어왔다.
도시의 소음 한가운데 누군가 여자의 어깨를 잡은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눈앞이 뿌옇게 번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크고 무거운 게 가슴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었다.
조금 전 두 손을 모아 던진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노래를 타고 갑자기, 들려왔다.
멈춰 선 두 발을 내려다보며, 여자는 한참을 거리 위에 서 있었다.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노래였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노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노래였다.
대답이었고, 조언이었고, 지도였고, 불빛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두 발로 그저 걸어가는 일일지도 몰라.’
걸어간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 산다는 것.
결국 도착한다는 것. 완성한다는 것.
여자는 이 삶의 지도를 잃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심장 소리 안에 길이 있으니 걱정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방울방울 맺혀 있던 눈물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선선한 눈가를 툭툭 털며 여자는,
이렇게 걸음마다 슬픔을 털어놓고 걸어가면 괜찮을 거라는
따뜻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 귓가를 타고 흘러 가슴으로 들어온 노래가
그렇게 얘기해주고 있었다.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이 노래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가 진 도시의 밤은 아름다웠다.
도시의 불빛들이 축하 폭죽처럼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노래의 제목을 다섯 번쯤 더 읽었다.
걸.어.가.자.
그리고 다시 한 번 리플레이 버튼을 꼬옥,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