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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쇼 Sep 27. 2017

내 인사 버릇

나는 인사할 때 구면이어도 내 이름을 말한다. 꺅- 소리지르며 손맞잡고 기뻐하는 사이가 아니면 이렇게 하게 된다.

상대방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와 상황을 기억하면 '그때의 정보라입니다'라고 한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상황을 언급하기도 한다. '강남에서 **과 함께 저녁 식사했던 정보라입니다'

상대방은 '아이구 당연히 기억하죠'라고 반갑게 인사하거나 '네-'라며 끄덕인다.

나는 이 인사법이 좋다. 나는 반가워 다가갔는데 상대방은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왜?'라고 여길 수 있으니 그쪽이 나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도록 돕고 인사 이후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버릇은 일하며 생겼다. 취재 때문에 이런저런 행사에서 인사 나눈 분을 한참 지나 다시 만났는데 날 모르는 눈빛이다. 서로 어색한 순간이 흐른다.

처음엔 정말 서운했다. 반가운 마음이 클수록 서운함은 정비례했다.

그런데 나도 그랬다. 행사장이나 모임에서 내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라고 눈인사하며 다가오는데 도통 기억나질 않았다. 최대한 아는 척하고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상대방이 눈치채고 '기억 못하시는구나'라고 하면 아찔했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다.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제 만나고 오늘 점심에 함께 있던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만나고 일주일마다 마주치면 모를까, 대부분 두 번째 만남은 먼 훗날에 이뤄진다. 한두 달이면 정말 짧고 때론 몇 년이 흐른다.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 아찔한 순간을 겪고 나서 난 인사법을 만들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자마자 뒤이어 덧붙이는 말이 있다. 회사 다닐 땐 ' (기업이름) 정보라입니다' 로 말했다. 요 때는 다니던 회사가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어서 상대방은 날 몰라도 '그 매체 사람이군' 이라며 응했던 것 같다.

회사를 나오고 근 3년 소속 없이 일하면서는 인사법을 바꿨다. 행사나 모임에 발길을 끊다시피 잘 안 갔지만, 옛 사람을 만날 일은 불시에 다가왔다. 이때부터는 내가 기억하는, 이 사람과 만난 순간을 묘사했다. '*** 모임에서 인사드렸던 정보라입니다', '**** 행사 때 *** 얘기했던 정보라입니다'

날 기억한 사람이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잊었던 사람이어도 '그때 이후로 잘 지내나요'라거나 같이 한 모임이나 행사, 동행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근황을 대화 소재로 삼을 수 있다. 날 제대로 기억하고 오랜만에 마주쳐 반갑게 여긴 분들은 '에이~ 기억하죠'라며 뭘 그런 걸 말하느냐고 타박을 살짝 한다. 그래도 상대방이 날 기억 못할 거란 걸 늘 염두한다. 이게 마음 편하다.

초면인사? 요새는 "보라쇼 정보라입니다"라고 한다. 주로 온라인으로는 아는데 오프라인 대면이 처음인 때 쓰는 말이다. 보라쇼 아이디는 내가 소속이 있든 없든 나와 함께한다. 퇴사했다고 버리지 않고, 다른 일을 구한다해서 바꾸지 않는다.

서로 얼굴과 이름 기억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나부터 뇌가 늙어가므로 이 방법을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뇌가 나이들었음을 고려한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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