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닿는 사람이고 싶었다.
1.
나이 오십이 넘어서 출판사에 평사원으로 들어갔다. 첫날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자기가 살아온 과정과 포부를 장황하게 펼쳤다. 끝나고 고참이 따로 불렀다. “앞으로 그렇게 길게 말하지 마세요.” 고참은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니 직원들 눈빛이 하나같이 살벌했다.
2.
본인은 친구가 별로 없다고 밝혔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그 내용을 다시 물었다. “친구 없다고 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대체 친구가 몇 명인가요?” 그런데 이석원은 친구의 수를 불려서 말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부끄럽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서.
처음은 강원국의 이야기 두 번째는 이석원 작가의 글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도 있구나….” 위의 작가들이 진솔하다고 느꼈다. 부끄러운 일을 말하는 건 수치심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뒤엔 진정성이 조용히 서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이 상대에게 기운 순간은 부끄러운 일을 고백할 때였다. 자만해서 누구나 쉽게 무시하기 일쑤였던 때, 잘못된 신념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가 하는 것들. 그러면 귀 기울인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극복했는지,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사는지 듣는다. 그런 순간이 몇 번 오가면 상대를 다르게 본다. 사람이 와닿는다.
나도 가닿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디 가서 쉽게 하지 못할 말을 꺼냈다. 흰 화면에 얼굴을 들이대는 일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글을 썼다.
일 년 반이 흘렀다.
그랬더니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