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조언하는 사람. 정작 조언받으면 열심히 방어하는 사람.
아내가 늦게 퇴근했다. 침대에 앉아 어깨를 죽 늘어뜨렸다. 일터에서 겪은 속상함을 토로했다. 나는 짧게 듣고 길게 말했다. ‘발전하는 과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면 안 된다. 안된 점은 바로 기록해야 한다. 시스템이 어쩌고 저쩌고…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일을 하다 실수를 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양 어깨를 죽 늘어뜨렸다. 아내가 지친 마음으로 퇴근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을 아내가 똑같이 한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듣기 싫었다. 그날 밤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언과 관련해서 싫어하는 유형이 두 가지 있다.
1. 쉽게 조언하는 사람.
(사람마다 의견이 다양하고 자기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며 운을 뗀다. 눈빛과 목소리,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다)
2. 충고가 들어오면 온갖 이유를 붙이며 자기를 방어하는 사람.
(사람마다 입장이 다양하고 자기도 하나의 입장일 뿐이라며 상대의 말문을 막는다. 눈빛과 목소리,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와 보니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모두 나였다.
겉만 보면 거의 다 아는 것 같다. 아내의 속상함에 조언이 약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 말이 약인지도 모르겠다. 입장이 바뀌니 해답 보단 위로가 고팠다. “충고나 조언은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하는 게 맞겠다. 공감이라도 못해 주면 그냥 듣자.” 계절이 돌 듯 상기하는 깨달음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한 번에 바뀔까. “저지르고 반성하고 다짐하고를 반복하면 나아지겠지. 성찰의 끈을 놓지 말자. 뉘우치지 않는 삶이 부끄러운 삶이니까.“ 이 말을 속으로 외며 민망한 심정을 달랬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위로받고 싶었을 텐데.” 거울을 봤다. 조명이 어슴푸레한 건지. 얼굴이 거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