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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박스 Feb 14. 2018

계급과 군번이 없이 사라져 버린 대한민국 비밀 특수부대

그대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로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까지 1만명을 넘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 7,726명을 실종처리했습니다. 과거에는 북파공작원들의 근무 사실조차 부정되었으며 2002년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최초로 내려졌지만 아직도 그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한민국을 위해 계급과 군번이 없이 대한민국 비밀 특수부대 5를 소개드립니다.



  502 비둘기 편대 


1970년대 해군은 뛰어난 장병들만 착출하여 신체검사와 체력검정을 실시한 뒤 불합격자는 다시 부대로 보냈으며 통과한 인원들은 우리나라 지도에 표기되지 않았던 D라는 섬에서 北공작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당시 거주하던 주민 모두를 다른지역으로 이주) 그들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면 죽는다'라는 슬로건 아래 조국을 위해 무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소속은 502 비둘기 편대였습니다. 



훈련은 28주 과정이였는데 주로 잠수훈련, 항해기법, 기술정비, 폭약설치, 무귀환 훈련, 유사지역침투훈련, 탈출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들이 직접 현지에 침투해 사진을 촬영해오는 임무 외 어떠한 작전을 펼쳤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게 없으며 일정기간 근무 후 일반부대로 돌아가 그 곳에서 전역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습니다.



  812 망치 부대 


북한이 전담 횡강도 무장간첩침투 및 미 정찰기 SR-71 격추시도를 하자 우리나라 전두환 신군부는 1982년초 기존방어개념의 작전을 공격정 방어개념으로 바꾸면서 해병 정예요원들로 이루어진 응징보복 부대 812 망치부대를 양성하였습니다. 이들은 1982년 1월 혹한기 동계해상 훈련을 시작으로 완벽한 임무완수 후 생환을 위해 인간이하의 지옥훈련을 받았습니다. 특히 홀로 산악지대에서 장기 은닉하며 뱀이나 들쥐 등을 잡아먹고 연명하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1983년 연평도 막사 앞 망치부대원)


이들은 '모조리 죽여라!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로'라는 구호 아래 가혹한 훈련을 이겨내며 진정한 인간병기가 되었으며 아군이 보호할 수 없는 NLL 선상을 넘어들며 스크린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북한군에게 잡힐 경우 자폭하기 위해 수류탄 2발씩 옷고리에 안전핀을 묶고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망치부대를 막기위해 해안방어에 북한군 1개 사단을 추가로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4년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망치부대는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803 선갑도 부대


선갑도 부대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을 기점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부대(정식 명칭은 육군 첩보부대 산하 902정보부대 803대)입니다. 이들 부대원의 차출 조건은 현역을 제외한 남자 중 처자식이나 부모가 없어야 되며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도소 죄수들 중심으로 공작원들이 차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영국 첩보부대 MI5와 미국의 CIA를 목표로 말도 안되는 수준의 가혹한 훈련을 받았으며 훈련 도중 사망하는 요원들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1969년 대북침투작전을 위해 백령도로 출정하였지만 작전 취소되었고 2년이 지나 1971년 8월 해체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이들의 공식적인 기록은 당연히 남아있지 않으며 당시 선갑도 대원 중 한명은 '우리들은 얼굴없는 공작원이었으며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와 다름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실미도 684 부대


684 부대도 위에 설명했던 803 선갑도 부대처럼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창설되었습니다. 당시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에 육군에서는 803 선갑도 부대, 해군은 해군은 UDU, 해병에서는 MIU를 창설하였고공군에서는 684 부대를 창설하였습니다. 당시 실미도 부대의 훈련은 제2325전대가 담당했습니다.



684 부대원들은 북한 특수부대보다 앞서기 위해 30㎏의 모래배낭을 메고 양 발목에도 각 5㎏의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았으며 야간행군을 포함해 시간당 13㎞를 주파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전세계 어느 특수부대원과 비교해도 기량이 뒤지지 않는 일당백 최정예 요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청설된지 3년 4개월이 지나 부대원들은 청와대로 진격하다가 자폭하여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MIU 부대


MIU 부대는 육/해/공 어느 곳을 막론하고 즉각 침투해 임무를 완수하는 살아서 대한민국 최고의 전천후 부대였습니다. 이들은 해병대원 중 우수하고 강인한 자를 중심으로 선발되었으며 북한 8군단같은 특수부대를 일격에 격퇴하고 주석궁에 침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때문에 선발과정에서 훈련과 작전 중 사망해도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외아들과 장남은 제외되었습니다.



평상시 임무수행을 위해 40~50명을 항상 유지했으며 훈련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해 결손인원이 생길 때마다 인원을 보충해 동일한 능력과 힘을 유지했으며 모든 요원들은 훈련시 “나라는 위해 몸바치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유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1975년10월 부대내에서 사병이 당직사관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MIU부대도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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