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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이 친형 김정남을 없애야만 했던 이유

by 밀리터리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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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갈라진 운명
“1971년생 김정남. 1984년생 김정은.
형제는 피를 나누었지만, 미래는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두 사람의 유년 시절은 겹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성격도, 세계관도 전혀 달랐습니다.

김정남은 스위스에서, 김정은은 평양에서 교육받았지만,
그들의 차이는 단순히 지리적 거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김정남—'열린 북한'을 꿈꾸다
“김정남은 한때 아버지 김정일의 총애를 받으며 차기 지도자 후보로 조명됐습니다.
그는 개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에게 자주 ‘중국식 개혁·개방’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북한도 언젠가 개방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이런 성향은 체제 안에서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2001년 도쿄 디즈니랜드 입국 사건은,
그에게 씌워졌던 ‘지도자 후계자’의 옷을 완전히 벗겨버렸습니다.
북한은 외신을 통해 이를 '실수'라 축소하려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치명적 결격 사유로 간주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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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정일의 결정—후계자는 ‘정통성’이 아니라 ‘통제성’
“김정일은 오랜 시간 세 아들 사이에서 후계자를 고민했습니다.
김정남은 지식과 개방성에서 앞섰지만,
문제는 그의 지나치게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이었습니다.

김정일이 원했던 건, ‘자기 통제 가능한 후계자’였습니다.
자기 생각보다, 체제 논리를 먼저 따르고,
‘자기 스타일로 꾸밀 생각 없는 아들’을 말이죠.

그 기준에 김정철은 너무 나약했고, 김정남은 너무 자유로웠습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김정은.
철저히 체제 중심으로 교육받고, 주변 장성택·리제강 등 핵심 엘리트가 길들인 인물.

2009년경, 김정은은 '장군님 후계자'로 내부 지시문에서 거론되며 실질적 후계자로 공식화됩니다.”

4. 김정은의 '두려움'과 권력의 언어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은 가장 어린 나이에 북한 지도자로 등극했습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공포’였습니다.

그는 자기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가까운 혈족부터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숙청은 백부 장성택.
김정일의 신임을 받던 인물이자, 김정남의 ‘정치적 보호막’이었습니다.

그 뒤를 잇는 건 각종 군 장성들과 고위 외교관들.
‘의심’만으로도 사라지는 사람이 생겨났고,
국가는 ‘침묵의 경쟁’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김정남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권 위협’이었습니다.”

5. 망명자의 삶—김정남의 외로운 인터뷰
“김정남은 2000년대 이후로 사실상 해외망명자였습니다.
마카오, 말레이시아, 베이징 등지를 떠돌며,
때로는 인터뷰를 통해 조심스러운 메시지를 냈습니다.

그는 2010년 한 일본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 북한의 변화를 원하지만, 참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말조차도, 체제에선 ‘이단’이었습니다.
해외망명 중에도 그의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추적됐고,
그의 생명은 점점 위태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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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죽음의 순간—VX, 그리고 공포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김정남은 평범한 관광객처럼 걸어가던 중,
두 명의 여성이 다가와 그의 얼굴에 액체를 뿌렸습니다.

그는 15분 뒤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VX 신경작용제 중독’.
UN이 생화학무기로 규정한 금지 물질로, 단 몇 밀리그램만으로도 치명적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벌어진 이 암살은 메시지였습니다.
‘형도 죽일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 체제 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7. 암살 이후—국제적 여파와 외교 격돌
“김정남 암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중국은 즉시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했고,
말레이시아는 북한 대사를 추방하는 외교적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한편 CIA와 일본 정보당국은 김정남을 ‘중국과 연결된 포스트 김정일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는 김정남이 단순한 형이 아니라, 체제 외부의 ‘대안 세력’으로도 존재했다는 증거였습니다.”

8. 감시 국가의 탄생—김정은 체제의 완성
“김정남 제거 이후, 김정은 체제는 본격적인 공포정치 시대로 돌입합니다.
국경 봉쇄, 내부 검열, 휴대폰 감청은 물론,
심지어 외교관·무역일꾼 가족까지도 불시에 조사를 받았습니다.

‘감시와 숙청’은 이제 체제 유지의 기본 도구가 되었고,
김정은은 단순한 지도자가 아닌, ‘두려움 그 자체’로 자리 잡게 됩니다.

내부 엘리트들은 체제의 충성서약을 매년 갱신해야 했고,
한 명의 지시로 수백 명이 사라질 수 있는
잔혹한 공포의 정치 시스템이 완성되었습니다.”

“김정남은 한때 사랑받던 아들이었고,
김정은은 후계 구도의 그림자였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냉정했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사랑이 아니라, 통제력과 공포로 결정되었고—
김정남은 그 원칙에 맞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북한 사회 전반의 권력 구조를 확정짓는 마지막 퍼즐이었습니다.”

10. 질문을 남기며…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은 왜 형제를 죽음으로 이끄는가.
공포는 어떻게 정권을 지탱하는가.
그리고, 언젠가 이 정권도 그 무게를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김정남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존재는 김정은 체제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는, 언제나 본체보다 오래 남습니다.”

출처: https://kimssine51.tistory.com/1396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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