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16. 초콜렛호떡
난 국민학교 5년, 초등학교 1년을 다녔다. 교문 밖 현판이 초등학교로 바뀔 즈음, 교문 안에서도 꽤 큰 변화가 있었다. 영어 방과 후 교실이 생긴 거다. 지금이야 3살 먹은 애들도 배우는게 영어라지만 그땐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었던 나는 알파벳도 몰랐으니까. 여튼 그런게 생긴다길래 쪼르르 가봤던 것 같다. 드르륵 열고 들어간 방과후교실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상 위엔 종이가 한 장 씩 놓여 있었다. 까끌까끌한 갱지로 된 시험지였다. 1번 문제엔 사과가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빈칸을 채우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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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심장이 세게 뛰었다. 난 답을 몰랐다. 같이 간 친구들의 눈치를 살폈다. 2번 문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지도 않은채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괜히 자존심 세우려 “그거 알면 내가 왜 배우러 갔겠어, 웃겨 정말.” 실없게 조잘거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십 몇 년이 흘렀다.
어제 난 딸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있었다. 소극적인 아이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싶었다. 온몸으로 움직이고 배우다 보면 친구들과 뛰노는 재미를 알겠지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수업 시작부터 벗어났다. 아이는 새로 산 수영복과 수영모까지 갖춰 입고선 얼음처럼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수영장에 데려오려 감자칩과 TV, 쿠키와 아이스크림까지 온갖 향응을 제공한 나로선 당황스런 일이었다. 조근조근 아이를 설득했다. 나중에 물에 빠져도 혼자 헤엄쳐나올 수 있다고,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언니들 노는 깊은 물에서도 놀 수 있다고. 아이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더 이상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수영에 도전해보겠다고 아이스크림이랑 쿠키 얻어먹었잖아!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진짜 수영 안할거면 앞으로 TV 영원히 못 볼 줄 알아.”
아이의 눈빛이 흔들린 순간, 협박이 통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왠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울먹였다. 그리곤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진짜였다. 하루 20분 씩 보는 TV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나는 안다. 그걸 포기하겠다는 건, 정말 하기
싫은 거다. 두 말 않코 짐을 챙겨 수영장을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마음이 상해 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이에게 화가 났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소심하고 겁많은 아이의 미래가 걱정됐다. 아이가 내 손을 잡으며 그랬다.
“나는 자신이 없었어 엄마”
불쑥 터진 아이의 고백. 아이는 그제서야 닭똥같은 눈물을 떨군다. 함께 들썩이는 아이의 어깨가 아직 너무 작았다.
수영 수업을 기다리며 아이는 한참동안 물끄러미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제집마냥 신나게 그리고 익숙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아이의 고백에 무심코 지나쳤던 아이의 그 시선을 떠올렸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아이에겐 이유가 있었다.
어느새 컴컴해진 하늘을 버스 창 밖으로 내다보며 난 갱지 시험지를 떠올렸다. Apple을 쓰지 못해서, 아니 Apple의 A를 쓰지 못해서 부끄러워 자리를 박차고 나왔더랬다. 그리고 이십년을 넘게 영어는 날 움츠려들게 하고 있다. 못해서 안했고 안해서 영영 못하게 되어버린 것은 영어 만이 아니었다. 운전도 운동도 그랬다. 스치지도 못하고 내 인생에서 멀어진 많은 것들이 그날따라 아팠다.
집에 들어와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던 아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직도 화났어요? 근데 나 배고파”
수영하고 오면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미리 구워놓고 나갔던 호떡이 눈에 들어왔다. 후라이팬에 식은 호떡을 데우자 아이가 우유 한 컵 챙겨 벌써 자리에 앉았다. 아이는 내 호떡을 참 좋아했다.
호떡을 처음 굽게 된 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제안했다. 김밥을 할까 뭘 할까 고민하다 호떡으로 정했다.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꿀호떡 안 좋아하는 애들은 없다는 어떤 블로그 글을 본 까닭이었다. 열심히 연습했다. 딸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야 하니 잘하고 싶었다. 쉽진 않았다. 밀가루와 이스트, 설탕, 소금과 올리브 오일을 섞어 부풀게 해야 했는데 어떤 반죽은 본드마냥 손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발효 시간도 달리 해보고 오븐에도 넣어봤다. 열 번은 족히 테스트하고 나서야 형태를 갖춘 호떡이 구워졌다. 물론, 어린이집 코리안 팬케이크 시연(?)은 대성공. 호떡집에 불난 것 마냥 호떡이 팔렸다. 으쓱해하던 아이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후로도 호떡 구울 일은 많았다. 소극적인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아이의 친구들을 자주 집에 초대했고 호떡은 실패하지 않는 메뉴였다. 처음엔 설탕에 시나몬 섞은 꿀호떡을 굽다 이젠 초콜렛도 넣고 모짜렐라 치즈도 넣는다. 크게도 굽고 작게도 굽는다. 모양도 점점 이뻐졌다. 자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아이는 언제 수영장에 다녀왔냐는 듯 언제 울었나는 듯 드라큘라 마냥 초콜릿을 입가에 묻히며 호떡을 먹는다. 내 마음도 그제서야 녹았다.
나는 아이가 고인 삶을 살까봐 두려웠다. 수영이든 무엇이든 못해서 안하고 안해서 영영 못하게 될까봐. 그래서 평생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스스로를 탓하게 될까봐, 그게 두려웠다. 내 지난 삼십 몇 년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한 손엔 호떡을 쥐고 한 손으론 엄지를 척, 해보이는 딸을 보며 생각한다. 참 못 구웠던 호떡을 어쩌다 자주 굽고 잘 굽게 되었는지를.
잘 굽고 싶었다. 딸과 딸의 친구들에게 맛있고 이쁜 호떡을 구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구웠다. 그래서 잘 굽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는 잘 굽지 못한대도 괜찮았다. 반죽이 터져 설탕이 범벅이 된 찐득찐득한 호떡도 우리 식구들은 즐겁게 먹어주었다. 시커멓게 탄 호떡도 남편은 요리조리 오려내 살뜰하게 먹었다. 본드 마냥 찐득해진 망한 반죽도 내 딸은 찰흙처럼 갖고 놀았다. 한 번 망하고 다른 반죽을 할 때면 남편은 늘 아이들을 도맡아 돌봤다. 그래서, 까짓거 못해도 암시롱 안했다. 오늘 이쁘고 맛난 호떡은 그 시간들이 만들었다.
앞으로도 아이에게 호떡을 자주 구워줄 생각이다. 호떡 뿐일까. 자신은 없지만 아이가 좋아할 법한 많은 음식들에 도전해봐야지. 같이 땀흘릴 수 있는 운동, 처음엔 고막이 고통스러울 악기도 좋겠다.
까짓거 못해도 암시롱 안해. 지금 못한단 건 좋은 거기도 해. 앞으로 잘할 일만 남은 거잖아. 어때. 우리 같이 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