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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21. 2019

딸, 엄마는 사실 천재였어!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15. 초콜릿 케이크

이번에도 완판이었다.

딸의 반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학교에서 겉도는 딸을 돕고 싶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주섬주섬 계량컵과 밀가루, 초콜렛, 버터, 계란을 꺼냈다. 오늘의 메뉴는 '초콜릿 케이크'다.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계량도 하고 휘핑도 했다. 휘핑기 소리가 신기한 지 둘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어떤 음식이든 눈으로 먼저 먹는 법, 슈가로 눈밭을 만들고 그 위에 토끼도 몇 마리 올렸다.




아이들을 데려와 식탁에 앉혔다. 눈토끼 초콜릿 케이크를 본 꼬마 손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긴장이 풀렸다. 아이는 쉬지 않고 먹었다. 입 안에 케이크를 가득 물곤 무어라 무어라 떠든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들린다. 맛있다는 거다. 야호, 이렇게 내 케이크는 이번에도 완판이다.



아이를 키우며 난 천재가 됐다.

요즘 류현진은 못 던지는 방법을 잊었고, 요즘 나는 맛없는 케이크를 굽는 방법을 잊었다. 초콜릿 케이크만이 아니다. 지난주에 구운 치즈 케이크는 내다 팔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전에 구웠던 바나나 케이크는 또 어땠고. 물론,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다. 첫째는 이런 아이다. "엄마. 난 배가 고프지만 맛없는 건 먹기 싫어요." 그래서 굽고, 버리고 또 구웠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케이크가 남아나질 않았다. 세상에, 케이크 천재가 된 거다.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 내가 물오른 건 케이크 만이 아니었다.


난 사랑보다 원망이 몇 곱절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운 그들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항상 이유가 있었던 아이의 눈물이 날 변화 시켰다.


난 낯선 이들과 있을 때면 어색함이 싫어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턱은 높이, 목소리는 경쾌하게- 먼저 인사 건네는 것도 수준급이다.

소극적인 엄마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난 자타공인 똥손, 예체능 바보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의 스케치북 절반은 내 작품이다.

아이와 함께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만든 변화다.


아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어쩌다 시작했고

아이가 즐거워해서 어쩌다 보니 계속했더니

생각보다 즐거웠고 생각보다 잘했다.

이쯤 되니 고백해야겠다. "딸, 엄마는 사실 천재였어!"


내게 육아는 눈물겨운 희생이 아니라 눈이 부신 성장.

앞으로 난 수백 판의 케이크를 구워 수많은 이들을 설레게 할 수 있다.

앞으로 난 누군가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앞으로 난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앞으로 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

케이크 천재, 마음 천재, 당당함 천재, 그리기 천재.

나의 육아는 눈물겨운 희생이 아니라 눈이 부신 성장이다.


+

딸, 이번 주도 고생했어.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초콜렛 케이크 구워줄게.

엄만 케이크 천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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