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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17. 2019

컵라면 함부로 욕하지 마라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14. 아침 컵라면

6살 내 딸은 고군분투 중이다.

한 달 남짓,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작은 손으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작은 발로 총총 혼자 도서관에 간다. 물끄러미 다른 친구들 노는 걸 쳐다볼 작은 두 눈에 행여 눈물이 맺히진 않을까. 작은 어깨에 올려진 삶의 무게가 어른인 내 눈에도 버거워 보인다.



고비는 아침마다 찾아온다.

학교에 가면서부터 아이는 유난히 아침잠이 많아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지 한참인데 아이는 눈을 꼭 감고 자는 체한다. 옷을 입는데 한 세월, 세수하는데 한 세월, 이를 닦는데 다시 한 세월이다. 이유는 하나다. 내 딸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그곳엔 엄마도, 동생도, 친구도 없으니까.



아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슬픔에 나도 함께 파묻혀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자. 도시락에 좋아하는 과일을 채웠다. 맨 아래칸엔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도 하나 넣었다. 학교에 데리러 갈 때마다 호들갑을 떨었다. 두 팔 벌려 아이를 안았고 하늘을 찌를 기세로 엄지척을 해 보였다. 아이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오늘 아침 컵라면도 그래서 끓여졌다. 


어젯밤 책을 읽던 아이가 그랬다.

"엄마, 내일도 학교에 가?” 

답은 정해져 있었고 그 답은 아이를 슬프게 할 게 뻔했다. 이럴 땐 아이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우리 딸, 내일 아침에 엄마가 뭐 만들어줄까? 연어 주먹밥? 치즈또띠아?”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아니 아니! 나... 컵라면 먹을래!”



그녀가 그랬다. 

무슨 애한테 아침부터 컵라면이냐고.

컵라면을 먹고 조금은 괜찮아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안부를 주고받다 아이들 끼니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아침엔 뭘 먹었냐 묻길래 컵라면이라 답했다. 이어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그녀의 답이 빨랐다. 

‘무슨 아침부터 컵라면이야. 그것도 애한테.’ 

맥이 빠졌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르는 말이다. 사정을 이야기하려던 두 번째 줄은 힘없이 지워졌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구나,라고 했어야 했다.

그녀를 탓하기엔 나부터 떳떳지 않았다. 나도 곧잘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해댔다. 엄마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내 딸에게.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 커튼 뒤로 숨어들 때, 일어나기 싫다 이불 뒤로 숨어들 때, 아침 먹기 싫다 딴청 피울 때 아이에게 무언가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가야 한다 채근했고 다그쳤다. 아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유를 말했다. 친구 없는 하루가 혼자 먹는 점심이 무척 힘들다고. 그제야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었단 걸 알았다. 내가 했던 많은 말이 ‘알지도 못하고’ 한 말이란 것도 알았다. 아이의 컵라면을 탓한 그녀처럼. 


그녀도 나도 “그랬구나.”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게뭐야” 몰아붙이는 대신.



집에 돌아와 아이가 먹고 간 컵라면을 치우며 중얼거렸다. 

"너,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설레는 아침을 만들어준 적 있었냐. 아니라면 너, 컵라면 함부로 욕하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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