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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포 May 16. 2020

나 알아요, 당신이 왜 잠 못 드는지

이대로 잠자리에 들면 왠지 손해 보는 기분.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루 종일 나를 맘대로 사용했는데 정작 내가 나를 사용할 몇 시간을 줄 수 없는 걸까? 더군다나 잠들면 또 내일이 올 텐데. '내일'이라는 일상은 호환, 마마가 득실거리는 위험한 곳이 아니던가! 그래도 용기를 내서 휴대폰 알람을 맞추고 불도 끈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잡념들. 결국 "아, 잠들어야 하는데..."라는 끝판왕 걱정과 사투를 벌이다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겨 잠이 든다.


잠들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사실은 서운해서 그런 거다. 아등바등 사는 것도 힘겨운데 알아주는 이 하나 없고 위로는 감히 기대도 못하는 삶. 누군가 아주 조금만이라도 알아준다면, 토닥토닥 말없는 손짓만이라도 해 준다면. 정말 한숨 잘 자고 일어나 내일이라는 하루로 다시 힘차게 뛰어들 것만 같은데 말이다.



조금은 가난해서, 그래서 아무 일도 살 수 없어 때로는 무료한 하루를 보냈던 나의 유년.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풍족했던 시기였는지 모른다. 강남의 아파트나 대단한 외제차를 턱 하니 살 수 없어 그렇지, 뭐든 원하면 대부분 얻을 수 있는 지금에도 이따금 유년에 기대어 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도시의 일상에 지칠 때면 유년의 부엌에 발을 들인다. 그럼 어느새 추억이라는 먹음직스러운 한상이 뚝딱 차려진다. 실컷 배를 채우고 다시 힘을 내 현실의 삶으로 뛰어들려는 참이면, 층층이 정갈하게 담긴 찬합 도시락 하나가 내 손에 건네 진다. 색 바랜 분홍빛 보자기, 단단히 틀어 맨 매듭이 마치 "앞 잘 보고 달려라, 넘어진다. 허기질 때 꺼내 먹어라."하고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듯하다.


그런 먹음직스러운 유년 한 상을
언제든 차려낼 수 있는 부엌이
바로 '고향'이다.

어릴 적 고향집 대문을 나서면 주변이 온통 논이었다.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도 이렇다 할 재미를 찾지 못할 때면 종종 물을 댄 초여름의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빼곡하게 떠있는 부평초(개구리밥)를 바라보곤 했다. 어떻게 물 위에 떠서 저리들 살아가고 있는지, 어린 마음에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위태롭게 보였다.


이제는 고향집 주변도 잘 닦여진 번듯한 건물이 여럿 들어서 부평초는 고사하고 물을 댄 논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집에서조차 더는 볼 수 없는 부평초들을 내가 사는 도시에서 심심찮게 본다. 나처럼 고향을 떠나 도시로 흘러들었거나, 도시에서 나고 자라 고향이란 개념이 낯설기만 한 현대인들. 도시라는 물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위태롭게 동동 떠다니는 모습이 영락없이 부평초를 닮았다.

도시는 아무나 자신의 땅에 뿌리를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힘껏 뻗어도 발끝은 물속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시라는 물가에 떠다니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도시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모습과도 단절되어 살아가게 된다.


변화의 속도 조차 따라가기 버거운 마당에 우리의 본모습이 있다는 고향이니 유년이니 하는 말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자신 고유의 모습을 잃고, 점점 단체나 조직에 소속된 부속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지친 목소리로 "남들만큼만,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는 서글픈 대답을 해가면서 말이다.


고향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누군지를.

내 친구 하나는 출신지역을 묻는 질문에 항상 고향에서 가까운 광역시의 이름을 댄다고 한다. 촌놈이라는 괄시를 피하기 위해 꽤 효과적이라면서. 난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내 고향을 분명하게 기억한 것이 지금껏 내가 버텨온 힘이기 때문이다. 고향은 단순히 '태어나 살던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이 촌스럽다고 바꿔 답할 수 없듯, 고향은 '나'라는 존재의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곳이다. 이 넓고 복잡한 도시에 비춰보면 티끌과 같이 작은 존재일지 몰라도, 고향은 나라는 존재의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증명해준다.


아, 그 사람이요. 봄이면 엄마 손을 잡고 뜰로 나가 쑥이니 냉이니 소쿠리 한가득 캐왔죠. 말은 또 얼마나 많았다고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개구쟁이였죠. 그런데 요즘엔 도시에 살며 말수가 좀 줄었다면서요?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었지. 함께했던 가족, 집안 구석구석, 눈감고도 뛰어다닐 수 있던 동네 골목들, 나도 잊은걸 고향 너는 잊지 않고 있구나. 그 모든 것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이지. 그리고 내일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내가 그렇듯 당신도 잠들 수 없는 먹먹한 밤이 또 찾아온다면, 고향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어릴 적 단단히 뿌리내렸던 고향의 들판에 다시 한번 단단히 발을 고정시킨 채 도시를 떠다니며 젖은 가슴을 드러내고 말리자. 구석구석 따스한 빛을 쪼이는 동안 그토록 고팠던 위로도 좀 받자. 아주 잠시라도. 비록 다시 도시를 떠다니며 젖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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