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꽃구경을 해본 4월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올해도 4월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되뇐 말은 ‘벚꽃구경 가야 하는데’였지만, 역시나 바듯이 하루를 살아내며 잠꼬대처럼 흘려본 말이 되고 말았다. 길가에 져가는 벚꽃들이 아쉬워 괜스레 쓸쓸해하며 말이다.
그러다 4월 중순을 앞둔 어느 날 출장을 다녀오다, 평소 지나지 않던 동네의 뒷길에 접어들자 만개한 벚꽃 길이 나왔다. 평소 다니던 길은 이미 꽃들이 져 가는데, 그 낯선 길에는 아직 한창이었다. 마침 곧 주말이니 이곳으로 벚꽃 구경을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로 주변에 주차 자리를 봐 두고, 일요일 오후 아내와 여섯 살 먹은 우리 귀염둥이를 데리고 그곳을 찾았다. 역시나 아직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나무들도 적당히 자라 있고, 길도 2~3백 미터는 이어져 오래간만에 벚꽃다운 벚꽃을 볼 수 있겠다며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이가 자꾸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쪽으로 내달린다.
“OO아~ 이리 와. 아이고~ OO아~, 아빠 말 좀 들어~!”
그렇게 수차례 이어지고 나니 더 이상 눈에 벚꽃이 들어오질 않았다. 결국 폭발해 “OOO! 아빠가 몇 번 말했어!”를 내뱉고 말았다. 큰소리에 깜짝 놀란 아이가 멈칫하며 아내를 슬쩍 바라보는데, 화난 남편의 목소리에 선뜻 편을 들어주지 못하자 이내 울먹울먹 거린다.
아이에게 큰소리친 나 자신도 싫고, 간만의 벚꽃 구경이 망쳐진 이 순간도 싫고, 모든 게 싫어져 괜히 한소리 더 했다. “OOO! 너 아빠가 몇 번 말했냐고!” 그러자 아이가 “OOO이라고 말하지 마!”를 내뱉고 울음을 터뜨린다. 평소 친근하게 ‘OO아~’라고 부르는데, 왜 남 대하듯 성까지 붙여 ‘OOO!’이라고 소리쳐 부르냐는, 6살 아이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서운함의 토로다. 하지만 나 역시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으니 그대로 아내와 아이를 차에 태웠다. 아이는 차에 타서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시트에 파묻고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야심 찼던 벚꽃 구경과 주말의 오후는 흘러갔다.
뭐,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 별다를 것 없이 또바쁜 일과를 맞이했다. 그리고 오늘 출장을 다녀오다 그 길을 다시 지나게 됐다.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꽃은 이미 지고 푸른 잎들이 가지를 매우고 있었다. 이제 벚꽃도 졌으니 볼 것도 없는데 자꾸만 그 길가에 눈이 간다. 얼마 전 그 주말, 차에서 내려 벚꽃을 보고 소리치며 달려가던 아이의 환한 웃음이 이제야 내 눈앞에 펼쳐진다.
우와~ 신기해하며 벚꽃나무들 하나하나를 만지고, 낮은 가지를 흔들어 꽃비를 내리게 하던 아이, 오죽 좋았으면 위험한 줄도 모르고 벚나무들이 늘어선 도로 쪽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갔을까. 오직 순수해야만 나올 수 있는 표정과 몸짓과 언어들로 진정한 벚꽃 놀이를 시작하던 아이는 몇 분 뒤 어떤 표정과 몸짓과 언어들로 무너졌던가.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에, 나는 정말 그렇게 소리쳐야만 했을까? 찻길로 내달리는 아이를 안고 큰 소리로 웃고, 함께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 줄 수는 없었을까. 다시는 오지 않을 불과 며칠 전 그 날이 못내 아쉬워, 오늘은 내가 그날의 아이처럼 울고 싶어 진다. 나는 다시는 없을 그 아름답던 순간에 정말 그래야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