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란 녀석은 6살 난 우리 이쁜이를 어떻게 꾀었는지,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5살 때부터 더 이상 아빠에게 해주지 않는 뽀뽀도 유튜브가 해달라면 바로 해줄 것 같다.
그래도 아이는 유튜브를 많이 보면 머리가 바보상자로 변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된다는 내 말을 믿는다. 반 협박으로 아이를 자리에 뉘어 가슴을 토닥토닥해주니 금세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그러다 눈을 번쩍 뜨더니 내게 말한다. 내일 새벽 아빠가 출근하기 전, 자신의 머리가 다시 똑똑상자로 돌아왔는지 꼭 확인해봐 달라는 것이다.(아이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릴 때, ‘똑똑’ 소리가 나면 똑똑상자, ‘바보’ 소리가 나면 바보상자다. 물론 내 입으로 내는 소리다!)
피식 웃음이 나지만 알았다고 굳게 약속하고 잠이 들었다.
잠깐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출근해야 하는 새벽이다. 잠든 사이 빠르게 흐른 시간의 배신에 서운해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서려다 문득 아이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손가락으로 똑똑 두드려본다. 뜻밖에도 세상모르고 자던 아이가 잠결에 묻는다. “바보상자야, 똑똑상자야...” 아이의 귓가에 “똑똑상자야, 잘 자”하고 돌아 나오는데 아이가 내게 말한다.
“물어봐줘서 고마워.”
아이는 걱정이 되었나 보다. 정말 바보상자가 된다면 어떡할지 말이다. 잠든 내내 무의식 속에서도 자꾸만 되뇌었나 보다. 아빠가 툭 던진 황당한 장난의 씨앗이 아이의 순수한 의식에 자리 잡아 밤새 뿌리를 내리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 문득 온갖 걱정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사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이왕 돌아본 김에 나의 의식에게 묻는다.
그래, 걱정해서 해결이 되니?
끝없이 머리에 달고 다녀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니?
그거 혹시 누군가 너에게 장난으로 던진 못된 씨앗인 건 아니니?
나의 의식이 갑자기 멈칫한다. 그런가? 사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가? 스스로 던진 질문 몇 개에 그동안 짊어져온 걱정의 무게가 갑자기 줄어드는 기분이다. 걱정도 다이어트가 된다니, 대단한 발견에 유레카를 외치며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출근한다. 물론 출근함과 동시에 다시 요요현상이 발생한다. 사무실의 번호키를 누를 때 나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책상 위에 쌓인 자료들이, 노트북 안에 도사리는 기안서들이...
걱정은 익숙한 모든 것에 잠복해 있다.
결국 다시고개 숙인 초라한 나의 의식을 마주한다. 그래도 잠시나마 걱정의 무게를 줄이고좋았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지만 이제 하루라는 일상을 시작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슬그머니 외면하며 돌아 나오는데 나의 의식이 내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