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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10. 2023

순간의 점을 찍어나가는 일

스스로 만드는 내래티브


최근 <서사의 위기>라는 한병철 철학자의 책이 눈에 들어와 훑어보았다. 동시에 즐겨보는 이충녕 철학자의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에서 비슷한 내용의 유튜브 콘텐츠가 올라왔다. 삶에 공허감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의 원인으로, 의미가 담긴 서사가 부족한 단편적인 '스토리'나 '숏츠'식 삶이 단절적인 고립감이나 무의미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분명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주된 오락이자 일상이 되며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의미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었다. 경험들이 단편적이니 만나서 하는 대화도 단편적이다. 고유의 취향들을 키워나가며 공유하는 시간들이, 독특한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들이 적어 보인다.



사실 모두의 삶은 하나의 서사다. 그 서사는 다른 누가 부여할 수도 있을 테지만 보통은 자기 자신이 부여한다. 자신의 삶을 모두 아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온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그 시간들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된다. 모든 순간의 점을 찍어나가며 내 삶의 선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삶의 굴곡은 이야기 속에서 재미와 의미가 된다. 주인공에게 평탄한 일만 있을 수도 없으며, 평탄한 일만 있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재미가 없다. 아니, '패터슨'과 같이 평탄해 보이는 평화로운 이야기 속에서도 매 요일 조금씩 버스운전사인 주인공이 취미로 쓰는 시가 점차 발전해 나가고, 매일의 승차객이 달라지며, 아내의 요리나 취미가 달라지고, 또 반려견이 시 공책을 찢는 위기와 절정의 상황에도 이른다. 여러 만화의 에피소드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듯, 어쩌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더더욱 그 자체로 고유하고 특별할지도 모른다. 보는 눈을 달리한다면. 이를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면, 신기하게도 마음은 채워진다.


여행이 재미있고, 우연히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새로운 점을 경험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살아온 삶을 묘사하며 이전의 점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타인의 점이든, 나의 점이든 모두 하나의 흥미로운 서사가 되어 영화나 책보다도 순간을 더 새롭고 즐겁게 하니까. 특히나 이야기가 잘 통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평소 하지 못했던 굴곡의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순간이 되어주니까 말이다.


이렇게 삶을 점을 찍어나가는 것으로 바라보면, 많은 것들은 가볍고 새로워진다. 종착지로써 목표를 정해 놓으면, 과정은 어찌어찌 견디겠으나,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는 허망해진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일을 천천히 발전시켜 나가는 점이든, 새로운 점들을 찍어 다채로운 우주를 만드는 일이든, 삶을 순간순간으로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은 스토리가 되고, 새삼 재미있어진다. 난 지금 어떤 점 속에서 일상을 살고 있지? 나는 어떠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나? 다음 점은 무엇으로 찍어볼까? 조금 환기가 필요하다면, 새로운 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에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 재미있는 부분은 평화로운 결말이 아니다, 진전되는 순간순간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하고 있는 일에서 고난이 오기도 한다. 그러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기도 한다. 전혀 몰랐던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기도 하고, 두려워했던 무언가를 극복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무언가는 변하고, 우리는 또 적응해 나간다.


이 순간들을 다시 기억하며 지금이 어떤 점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때,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일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순간 속 내가 어떠했으면 하는지, 순간에 몰입하며 또 일상을 새로이 하며. 매일을 새롭게 산다는 것은 퍽 신비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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