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 Nov 27. 2023

당신의 사소한 사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기억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사진처럼 펼쳐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억 속에는 유쾌한 것들뿐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만이 가장 잘 아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직접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 그에 대해 관심 가지고 부여하는 의미들, 또 이로 인한 다양한 감정들이 아닐까. 사소한 자신의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도출해 내는 것만큼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었나. 나만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들, 그 개인적인 일들을 풀어내며 타인과 공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진 일일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무엇인 척하는 것이 더 쉽다. 없었던 척, 아닌 척. 많은 일들이 잊히겠지만 어떠한 기억들은 세포 속에 자리 잡아 있다. 그러한 기억들은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을 이룬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까맣게 잊는 것은 어리석다. 오히려 그 기억들에 의미를 담아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름다운 것은 완벽하거나 겉으로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한 해 한 해 그려낸 나이테처럼, 누군가의 눈에 서린 주름들처럼, 소방관의 손에 있는 화상 흉터처럼. 그냥 바라봄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할아버지의 깊고 유쾌한 눈웃음과, 갓 태어난 아기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웃음 중 무엇이 더 아름답다고 나는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들의 사소한 사정이 말해준다. 효율성과 형식에 사로잡힌 것 같은 기계적 삶 속에서도, 모두에겐 따뜻한 알맹이가 있다. 울고 웃는 순간이, 감동하는 순간이, 슬퍼하고 부끄러워하고 화났다가 다시 평온해지는 순간이 있는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언제부턴가, 상처를 극복한 흉터가 있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느낀다. 그들에게는 때로 솟아오르는 가시나 벽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더 많은 타인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다. 연고를 잘 발라 아물고, 깊어진 그들은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안아주고 치유하는 이가 되어준다.


우리를 이루는 것들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 미묘한 많은 일들이 세포 하나하나를 이룬다. 어느 누구를 부러워하기보다 내 세포에 새겨진 아름다움들을 다시 탐구해 보는 게 낫다. 그 사소한 것들이 당신의 고유함을, 특별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쁨과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