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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노원 Apr 13. 2022

어느 봄날

2022.04.12

1.

아침부터 모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다.


고양이들이 자다가 놀라 두리번거리고

아침을 잔잔히 채워주던 라디오 소리가 들리지 않다.


아파트 단지 수목 소독은 어제 했는데,

이 굉음은 또 뭐란 말인가.


혹시...



2.

우리집 앞은 분수와 연못으로 조경되어 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올 즈음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던 시기였다. 뭐라도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다 잘 될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딴에는 찾은 것이 사주 봐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티브이에도 나오고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내 사주에서 물이 돈을 의미하니 물 가까이 살면 좋다고 했다. 응?


나는 항상 강 근처에 살았다.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 후 신혼집이 있던 곳도 강은 아니어도 천이 흘렀고 그 후에 아이들과 함께 자리 잡은 이곳도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인데. 이 정도면 통장 잔고는 늘 넉넉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참 비싼 응원을 받았구나 싶어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가볍고 간사한그이의 말이 귀를 맴맴 돌았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간격을 두고 찰찰 쏟아지는 인공의 소리가 나를 응원해 주고 돈이라도 쏟아질 화수분처럼 여겨젔다. 그렇게까지 어리석을 필요는 없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안쓰러운 시간들이었다.


3.

이 분수는 늦가을 무렵이 되면 물을 뺀다.

물속에서 한철을 나던 물고기도 모두 건져내어 어디론가 데려간다. 봄에 다시 오는 물고기들이 그 물고기인지 다른 물고기인지는 늘 궁금하나 확인할 길없다.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물어보는 상상도 해보았으나 황당할 그이들의 심정과 안색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라 데없는 궁금증은 묻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한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다시 물을 채워 넣는데, 그게 대략 3월 중순쯤이다. 꽃샘추위도 지나고 더 이상 물이 얼지 않을 시점이 되면 다시 물을 넣는 것이다. 아마 저 분수대의 물이 얼면 물을 끌어올리는 장치나 전기 시설이 고장 날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물을 다 빼고 다시 다 넣고 하는 귀찮은 일을 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4월이 되도록 분수에 물을 넣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분수대도 운영을 안 하나? 관리사무소에 인력이 모자라나? 모기나 벌레가 생긴다고 민원이 들어왔나?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차에, 그래, 바로 오늘이 분수에 물을 넣는 날이었던 것이다!


4.

마른 분수대 바닥에 쌓인 나뭇잎들은 굉음에 날리는 것인지 모터를 통한 바람에 날리는 것인지 분수대 바닥에서 바깥쪽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제 아이들은 당분간 분수 바닥의 돌을 밟지 못할 것이다. 물에 잠긴 바닥이 다시 드러날 때까지 이번엔 물 시간이다.


자연의 변화가, 끝없는 순환이 경이롭다.

나이가 들 수록 죽음과 탄생을 무한히 반복하는 꽃들이, 나뭇잎들이 놀랍다. 다시 한번 겨울을 이기고 돌아와 또 살아보기로 한 그들의 결심이 더 이상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반복하기로 한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살기로 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응원해야 할지, 애도해야 할지 모르겠다.


5.

오늘은 봄햇살이 찬란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내린다. 우리 집 앞에 꿈과 희망을 담은 분수대엔 맑은 물이 채워지고 오늘 밤부터는 봄비가 온다고 한다. 잘 짜인 순간처럼 완벽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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