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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pr 08. 2024

자랑을 좋아하지 않다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

면접관, 매니저로 역할한 경험에 비추어

자랑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일까. 한국 사람의 문화적 습성 때문일까. 군자는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어차피 낭중지추라거나 하는 것들. 그런 건 아니고, 주로 사람들이 뽐내는 것은 비교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뽐낼 때는 나의 비교우위이고, 남이 뽐낼 때는 나의 비교열위이니까, 정확하게는 남이 자랑을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겠다. 그러니 누군가 자랑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한 일임을 부정할 순 없겠다. 향상심이 마음먹는 것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니까. 어떤 비교는 필요한 일이다.


비교가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각자의 자랑 문서를 모아서 결정하고, 자랑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갖는 것. 그래,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채용을 하면서 일이 많아진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그 자체의 필요와 중요성 그리고 각자의 삶을 듣는 일 자체는 괜찮은 일이긴 하다. 물론, 지원자, 면접자의 역량이 높은 수준일 때 위주이긴 하다. 판단의 기준을 많이 낮췄음에도 여전히 내 눈에 차지 않는 지원자는 있고, 그런 사람을 대할 때는 내 시간에 대한 혹은 이것을 보기로 한 내 결정에 대한 후회가 차오른다.


한 편으로는 자랑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자랑만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내 성향 때문인지, 한국의 문화적인 배경 때문인지. 겸손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자기 홍보와 자기 확신을 이야기하는 서구권 문화와 심리학적인 지식들에 대한 생각도 같이 든다. 꼭 그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일까? 개인의 입장에서는?


동양의 개인 성장, 계발에 대한 담론 중 유교 기반의 군자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긴 한다. 대학(학교 말고 책)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전에 무엇이 있냐 하면 격물치지 성의정심이 있다. 사물에 대해서 이치를 파악하고 마음을 모으고, 바르게 하여 개인 수양을 완성함으로 발전하는 것. 그러니 군자라 함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에 가까운 표현이 어울린다고 보인다. 다시, 어차피 낭중지추 한다는데, 꼭 앞세워 누가 잘했나 따질 필요가 있나.


 <쟁선계>의 말.

문(門)은 벽(壁)이 아닌 공(空) 가운데 있으니,
앞을 다투는 세상이란 뜬구름 같도다
門非在壁在空中
爭先之界若浮雲


그래서 다시, 채용의 문제로 돌아오면. 결국 누군가와의 잘남과 못남을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기록을 뛰어넘는 것은 기네스북과 올림픽으로 충분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현재 이뤄낸 것보다는 앞으로 더 나아갈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가능한 검증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 성장 동력이 우리와 함께할 때 긍정적인 연쇄작용으로 이어질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채용 면접을 시작할 때, 주로 스포츠 비유를 드는데, 늘 그렇듯 비유야말로 뜬구름에 가깝겠지만. 이런 식으로 한다. 지원자분이 뽑히지 않는다면, 그것이 지원자의 자질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포지션에 맞지 않거나 우리의 팀컬러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격수 11명으로 축구를 할 수 없고, 투수 10명 모아놓고 야구를 할 수 없듯이 말이죠. 이건 정말 진심이다. 


물론, 개인이 자랑할 만큼 뛰어난, 예컨대 오타니 같은 선수라면 또 모르지만. 사실 재능은 실존하고, 역량의 한계 역시 인정해야만 하긴 한다. 또, 메시나 엘링 홀란 같은 선수라면 팀 컬러를 바꾸는 것을, 팀의 전술 전략을 바꿀 것을 고려할 만큼의 선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비즈니스 영역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는 쉽지는 않고, 적어도 내가 지금 찾는 포지션에는 그런 사람이 오면 안 된다.(주니어 포지션이니까, 다들 경력자만 찾으면 주니어는 어디서 경력을 쌓나?)


그래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두 명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면. 이뤄낸 것이 여전히 많은 한 명과, 무언가 더 나아가려는 한 명. 현재만 놓고 보면 전자를 골라야만 할 것 같은데. 성장의 태도와 자질은 모두 있어 보이긴 한다. 이럴 경우에는 결국 페어를 봐야 할 것. 1+1 이 2가 아닌 그 이상이 되는 것은 조합이니까. 그것을 고민한 결과를 오늘 내야 하고, 이제 불합격을 통보해야 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미 불합격을 결정했고, 통보도 했지만 피드백 메일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지원에 대한 감사인사, 모시지 못함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피력하겠지만, 그중 한 분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충분한 자질과 경험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왜인지 면접에 너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인지라, 내가 면접을 임할 때 너무 피곤해서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닌지 수 번 스스로 되물었다.


개인적으로는 긴장감과 자존감의 무너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껏해야 인생에서 1시간 30분 정도 대화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진단할 정도로 내가 경험이 많지도,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때는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볼 때는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겸손한 것과, 그것을 못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 같은데 후자 같았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인지 계속되는 실패/탈락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순 없었다. 어쨌든 자원이 더더욱 희소한 스타트업으로, 채용에 매우 매우 신중해야 하고, 면접에 마음이 맞았다고 해도 채용 후 어찌 될지 모르는데- 또한 공정하게 비교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부당한 결정이리라.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건네어야 할까. 싸구려 위로 밖에는 더할 말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힘내라는 말이 사치가 되어가는 시절에. 그것을 오늘 고민하고 써 내려가야겠지. 사실 이렇게 고민하고 메일 쓰는 것이 의미가 없으리라 여겨져서 고민하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힘내라는 말을 건네고 싶은 것이지. <무빙>에 나온 문장. “응원할게” 같은 울림이 전달될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지. 진심일 테니까.



탈고를 하며 덧붙인 이야기


여전히, 자랑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 자랑은 정말 정말 싫다. 내가 이거 잘했다고 말하는 거 쉽지 않은 일이고. 칭찬은 두드러기 날 정도로 못 참는 편이었다. 이제는 조금 나아졌다. 특히 그 자랑이 '나'만의 것이 아닐 때는 말이다. 팔불출이라는 조어가 왜 생겼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채용한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 팀이 어려운 일을 해결해 내는 것은 너무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반대로 누군가가 그러한 활동에 칭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선가 우리 팀을 자랑할 수 있겠단 생각은 든다. 


한편, 다른 포지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원자가 기억난다. 그는 자신도 자랑했지만, 그건 두드러지지 않았고 자신이 만든 '제품'을 자랑했다. 당신에게 좋은 제품은 무엇입니까? 응 내가 만든 제품. 그리고 그 이유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풀어 나갔다. 이야, 정말 조건이 맞았다면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스웩이었다. 이제야, 내가 우리 팀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어떤 마인드셋으로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한 문장으로 좁혀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것 아닐까, 자랑하고픈 제품. 에어비엔비 CEO 인지, CPO인지 한 말. If you can't name on it, don't ship it. 오케이, 다시 돌아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필요한 자랑을 해야 한다. 무작정 다른 상황에 놓인 것들을 하나의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별로 멋이 없다. 어떤 쇼츠였는지 릴스에서, 하버드 대학생들이 nature or nurse 같은 질문, 그러니까 당신의 성공에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있었는가 물어보는 질문에 - 적어도 쇼츠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환경의 덕분이 크다라고 말하는 게 기억난다. 어떠한 잣대는 참으로 잔인하고, 3루에 시작한 사람과 아직 대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곤 한다. 응, 그건 참 별로이다. 


자랑할 것은 내가 이뤄낸 것. 그 이뤄냄의 가치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믿는 마음. 그것을 함께 이뤄낸 동료들이 아닐까. 앞으로 그런 자랑에 대해서는 인색하지 말아야겠다. 


끝!




초고: 2023년 8월 21일

탈고: 2024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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