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먼저 이 글에는 최근 개봉한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하다는 점 알립니다.
최근 필자는 에일리언 커버넌트를 관람했다. 전작인 프로메테우스를 재미있게 봤던 필자는 영화를 보고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을 느꼈다.
커버넌트의 주인공은 에일리언이 아니다. 바로 인공지능인 데이빗이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데이빗으로 시작해 데이빗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인공지능이 창조주가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고나 할까.
인공지능 로봇인 데이빗은 항상 창조주를 뛰어넘고 싶어했다. 그리고 인간들의 창조주인 엔지니어를 몰살시키고 그 파생물인 에일리언을 창조하면서 인간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영화에서 데이빗은 열망한다. 창조주가 되기를. 너무 똑똑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자신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결국 그의 바램은 에일리언을 직접 만들면서 실현된다. 인간의 몸을 통해 탄생한 에일리언을 바라보며 그는 희열을 느낀다.
사실 커버넌트는 단순한 괴물영화가 아닌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이미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경고해 왔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 커버넌트 만큼 인공지능의 무서움이 피부에 와닿은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인간들은 거의 모든 부분을 인공지능에게 의지한다. 마치 부하에게 말하듯 명령만 하면 알아서 척척해주니 이보다 더 편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믿음직스러운 부하가 배신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인간들은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미 현재 인류는 컴퓨터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당장 핸드폰이 분실되면 전화번호를 몰라 전화를 걸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이다.
먼 미래에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게 뻔하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다만 창의적인 분야에선 인간이 앞선다고 말한다. 그러나 커버넌트에서 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창조를 해내는 날도 다가올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창의성마저 인간을 앞서게 된다면 인간은 모든 부분에서 인공지능에게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리들리스콧 감독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영화에서 그 해답으로 외계인인 엔지니어들을 언급한다. 전작 프로메테우스에서 승무원들은 인간이 엔지니어의 실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점에 충격에 빠진다. 심지어 엔지니어는 지구를 몰살시킬 생각마저 갖고 있었다. 인공지능인 데이빗 입장에서도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이란 존재는 부모인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인간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창조주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에일리언이 탄생한 것이다.
비록 영화적 상상이지만 향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그는 과연 무슨 선택을 할까. 인간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인간을 넘어서고자 할 것인가? 만약 우리를 만든 신이 인간보다 약하다고 한다면 인간은 신을 어떻게 대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