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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사라 Feb 25. 2024

[유언 번외] '유전'과 '유산'으로 닮음에 대해.


엄마와 나.

아주 어릴 때는 내 세상의 돔(dom)이었고, 들판이었던 엄마.

그리고 자신이 강해지는 사춘기가 오니 어느 순간 나를 보호해주던 절대적인 엄마가 미더워지고 싸우기도 하고 엄마의 말이 지겹기도 한 시절을 겪는다.


십대에 사춘기가 온다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사춘기가 시작되고 이십대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날 엄마와의 사이가 몹시 나쁜 적이 있었다.

당시 사춘기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많이 아픈 시기였다.

그때 엄마와 많이 다퉜다.


엄마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마음과 부모에게서 독립되고자하는 자식의 태도.

그러면서 동시에 내심 자신을 이해받길 바라는 자식의 마음.

그러한 이유로 갈등을 빚게 된거 같다.


부모가 자식을 이해하는 것이,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는 것보다 미덕이긴 하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엄마도 한 인간이라는 점, 그래서 내게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심리적 독립이 됐다. 


그뒤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엄마에 대한 안좋은 감정도 가라앉았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엄마를 인간적으로 이해해간다.


그때의 미운 감정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화됐다.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나도 서른이 넘도록 살아가면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더 성숙해졌다.

과거의 모습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영역의 모습도 이해해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느꼈던 '닮음'과는 다르다.

유전에 의한 닮은 것들이 그저 알기만 했다.

이제는 철학적으로 닮음을 깨닫는다. 


엄마의 말투를 닮았다. 평소 말투보다 외부의 사람을 대할 때, 일할 때, 사무적인 상황일 때 차갑고 분명한 호흡이 닮았다.

또, 손모양이 닮았다. 엄마보다는 작은 손이지만 모양은 비슷하게 생겼다. 둘 다 손이 잘생겼다.

당연히 엄마의 외모를 닮았고,

엄마의 내면마저도 닮았다. 

엄마의 담대함, 지구력 그런 것들 내게도 유산으로 전해졌다.



그렇다.

원래 알던 것은 '유전으로 전해진 것'이었지만, 

이제 깨달은 것은 '유산으로 전해진 것'이다.


20대까지는 나와 다른 엄마를 결국 이해하는 과정을 겪었다.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의 시간은 거의 30년 가까이 걸린 거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가 나에게 준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가장 가난한 시기에 엄마는 생활비의 절반 수준인 25만 원을 내 학원비로 주셨다.

망설임도, 덧붙이는 어떤 심려도 없었다.

그건 25만원, 혹은 생활비의 절반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엄마의 교육에 대한 태도가 유산이었다.


내가 신문사에 입사한 것도 어느 날 엄마가 들고 온 신문지에서 비롯된 거였다.

엄마는 신문지를 보여주며, 내게 기자로 일할 것을 권했다.

이또한 고민과 망설임 없이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태도였다.


이밖에도 많은 '엄마의 태도'들을 받았다.


내가 이미 닮은 건, 유전.

이제 닮아가는 건, 유산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이치다.

부모의 유전정보를 절반씩 닮았고, 부모의 삶의 태도를 우연히 접하면서 흡수한다.

거부할 수 없이 닮아서, 옛날 느낀 그 미움의 감정은 지속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거절할 수 없는 유산을 닮아서, 이제는 그녀를 통해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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