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름 하면 포항 바다가 생각난다.
포항은 내가 지금 직장에 오기 전 직장을 위해 1년 정도 살았던 곳이다.
부산 사람인 나는 처음 포항에 갔을 때 포항 바다가 성에 차지 않았다. 특히 내가 살았던 곳은 영일대 해수욕장이 걸어서 5분 거리였는데 영일대 해수욕장 너머로 보이는 포스코의 광경이 흉물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곳을 걷고 뛰는 횟수가 늘면서 나는 서서히 정이 들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보겠다고 간 연구소는 숫자로 적히는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생물을 해부해야 했다. 청어, 대게, 기름가자미, 문어, 갑오징어 등… 가장 당황스럽고 회의감이 들었을 때는 어마무시하게 큰 대구의 머리통을 톱으로 갈라 물고기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이석을 뽑아낼 때였다. 물살이들을 해부할 때 냄새도 힘들었지만 너무 많은 사체들이 쌓여가는 걸 보고 죄책감이 들었다. 특히, 문어는 정말 끈질기게 반항한다. 반이 갈려도 빨판으로 손을 붙잡는다. 문어는 지능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나는 무뎌져 갔다.
해부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업무강도가 높지 않았던 전 직장에서 나를 또 못 견디게 하는 건 정규직이 아니라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일이 없을 때는 회사에서 자격증 공부와 NCS 공부를 했다. 그리고 퇴근하고는 불안감을 달래고자 바다를 매일 걷고 뛰었다. 청춘은 겨울보다 여름을 닮아있었다.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뜨거워서 쥐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는 나를 보면 잘했다고 하려나? 오히려 그때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나는 배부른 걸까? 아직 내 여름은 끝나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