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뒤끝 없는 아프리카식 역사 인식
아시아 엑소더스를 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궁금증 해소를 어느 정도 책임지는 역할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부여받는다. 한국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야 손흥민, 김정은(한반도로 그 범위를 넓힐 경우)이라는 주제로 대부분 걸러지긴 하지만, 가끔씩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종종 있다. 한국과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는 아프리카 국가라면 한국에서 오르내리는 이슈는 신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결혼을 늦게 하는지, 왜 아이를 그렇게 안 낳으려고 하는지, 이들에겐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현상이다. 왠지는 모르나 이상하게 이러한 질문에 친절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야 할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야 많지만 그중에서도 어려운 질문 하나를 꼽자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다.
우간다에 온 지 한 달쯤 됐을 무렵, 현지어 강사인 아멜리아가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아멜리아가 내게 한국인과 일본인의 외향을 보고 구별해낼 수 있는지를 물어봤고 그 후속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한국과 일본이 어떤 역사를 공유하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민 지배 이후 일본은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어요. 특히 강제 징용과 성 노예 착취 등의 만행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요."
"한국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나요?"
"이제 74년 됐네요."
"그 정도면 이제 용서해줘도 되지 않나요?"
한 순간에 용서할 줄 모르는 뒤끝 있는 민족으로 분류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나는 용서를 하기 위해선 사과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설명했지만, 그녀는 어쨌건 내가 용서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눈망울을 나는 보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우간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유독 더 억울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식민 지배의 아픔을 우리보다 더 뼈 아프게 겪은 곳이다. 그러니 제국주의라면 치를 떨어야 정상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 편일 줄 알았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일본인을 안 좋아하나요?"
아멜리아에게 분절된 분노를 설명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분노, 그리고 현재까지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가 현재 평범한 일본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복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일본인을 좋아해요. 하지만 일본 정부, 그리고 과거 일본의 만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는 가지고 있어요. 이 두 가지는 분절적이에요. 예전에는 이것이 구분되지 않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를 구분할 줄 안답니다."
아멜리아와의 대화를 확장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지만, 지나칠 만큼 쿨하게 피지배 역사를 용서해주는 다른 사례도 발견할 수 있었다.
2010년 10월, DR콩고의 독립 50주년 기념식은 아프리카 저개발 책임론이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사실 이 행사는 식민 종주국 벨기에에게 부담스러운 행사였다. 고무와 동, 구리를 얻기 위해 1000만 명 이상을 죽이고, 손발을 자른 레오폴드 2세와 벨기에는 독립 이후 피로 점철된 DR콩고의 잔혹사에 대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00년대 초 마크 트웨인이나 코난 도일 같은 소설가들이 이름 붙인 '벨기에 범죄'니 레오폴드의 망령'은 잊을 만하면 다시 회자되고는 했던 것이다.
그런데 콩고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발언은 벨기에 정부의 어깨를 사뭇 가볍게 해주었다. 킨샤샤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가 독립했을 때 유엔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여기에 왔다. 지금 우리는 독립 50주년을 자축하고 있는데, 아직도 유엔은 여기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라고 했으며, 콩고 외교장관마저도 "독립 50주년, 이제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과거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고 있을 수만도 없고,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를 레오폴드 2세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 윤상욱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쿨함과 뒤끝 없음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의 시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꼭 맞는 시대인 셈이다. 나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비춰봤을 때 구식에 가까운 사람이다. 쿨하지 못하게 과거에 천착하고 뒤끝도 길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비록 쿨함을 따라가는 것이 온당한 일일지라도, 나만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 내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쿨하지 못하고 뒤끝도 길다. 그래서 분절된 분노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식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