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야지'라는 잔소리
두 달에 한 번씩 할머니와 고모는 약을 타러 병원에 간다. 시골에서 도시에 있는 대형병원까지는 꽤 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아빠는 매번 동행한다. 오늘은 바쁜 아빠를 대신해 내가 나섰다. 코스는 '집-할머니 댁-병원-약국-다시 할머니 댁'이다. 오전 9시까지 병원에 가야 하는데 월요일 아침이라 차가 더 막힌다. 다행히 일찍 나와서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 할머니와 고모는 내 운전실력이 못 미더운지 계속 걱정했다. 등을 대고 편히 앉지 못하셨다. 그러다가 폭이 좁은 도로의 벚꽃길을 지나게 됐다. 주말에 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꽃잎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연신 "눈송이네. 손녀딸 덕분에 꽃구경하네."라며 몇 년 전 고모와 꽃구경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 야기를 오며 가며 두 번 들었다.
할머니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씀하신다. 이것은 아빠를 이어 남동생에게 유전되었다. 듣는 사람은 조금 괴롭지만 말하는 사람은 자각하지 못한다. 명절 때마다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여기에 맞장구치는 것도 비슷해서 살짝 따분하다. 달라지는 것은 것은 할머니의 움직임이다. 해가 갈수록 느려지신다.
오늘의 주제는 '결혼'이었다. 말씀은 돌고 돌았다. "만나는 사람은 있니? 늙어서는 못한다. 돈 없어도 똘똘한 놈을 만나야 한다. 요즘은 다 연애한다. 늦게 고르면 없다. 잘 골라서 얼른 시집가라. 올 가을에는 결혼해라. 할매 죽기 전에 가야 한다."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돈 많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 말고, 없더라도 사람만 괜찮으면 그냥 가서 살라고 했다.
"똘똘한 놈 어디서 만나요?"라는 물음에는 답해주지 않으셨다. 운이 좋으면 십 년 안에는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찌 되든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