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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글쓰기 Feb 18. 2024

손주돌보미

황혼육아

나는 두 명의 딸을 낳았다. 두 딸은 아들딸 하나씩을 낳아 모두 4명의 외손자가 있다. 다행히 모두 아들을 하나씩 낳아 걱정을 덜었다, 결혼 초에는 자기 시집 근처에서 살다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친정이 있는 방화동으로 이사 왔다. 두 딸이 직장을 나가고 있어 4명의 외손자를 주로 외할머니가 돌봐주고 나는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를 돌봐주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동창들을 만나면 “손자 돌보지 마라. 인생을 즐길 시간도 없는데 골병든다."라고 말한다. 아들을 둔 부모들은 장가를 가더니 친가에는 오지 않고 처가에만 가고 아들 빼앗겼다고 투덜댄다. 며느리가 어려울 때 손자들은 돌봐 주지도 않고 부모 대접만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여자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변명을 해 주곤 한다.


2009년 11월경에 다섯 살짜리 외손녀 유진이가 신종플루로 의심이 난다고 하여 야단법석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열이 나고 기침이 나면 일단 신종플루로 의심했다. 예방주사나 치료 약도 없고 공포에 대상이었다. 확진이 나기 전까지는 환자와 격리하여 생활할 수도 없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으로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 아빠는 프랑스에 출장 가고 외할머니는 고령에 몸이 약해 감염 위험이 높았고 어린 10개월 된 형준이에게 감염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중에 음성으로 판단 낫지만 애 엄마는 정신이 나간 채 일주일을 보낸 적도 있다. 딸은 2010년 봄에 직장과 육아의 어려움으로 갑상샘암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손주를 제대로 키우고 싶어 독서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조부모 손주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았다. 손주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자기들 눈높이에 맞게 놀아 주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사마귀를 할 테니 할아버지는 애벌레 놀이”하자고 하거나 자기들 율동에 맞춰 춤을 추자고 할 때는 곤욕스럽기도 했다.

 손주 보면서 어려운 일은 다치는 일이다. 항상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지만 사고는 순식간이다. 철봉에서 거꾸로 떨어져 119를 부른 적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외손녀는 학교 수업 끝나면 미술, 영어, 음악 학원을 전전하다가 저녁 먹을 때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오곤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 나이에 공부에 시달려 자라는 손주를 볼 때마다 안쓰럽다. 학원 없애는 대통령 후보가 나오면 틀림없이 당선될 것 같다. 나는 늦게 돌아오는 손주에게 애처로워 발을 씻어주며 발 마사지를 해 주곤 한다.


나는 외손자라고 부르는 것보다 그냥 손자라고 부르고 싶었다. 외손자라고 하면 왠지 거리감을 느낀다. 손자들은 엄마 아빠가 직장에 다니는 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 외할머니를 무척 따른다. 

아내는 어린이를 정말 좋아한다. 우리 집 아이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좋아한다. 18년째 손자 돌보미를 하고 있다. 나도 도와주고 있지만 빨래하고 음식준비는 아내 몫이다. 허리뿐만 아니라 무릎까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한다. 흰 머리카락은 자꾸 늘어만 가고 고왔던 얼굴은 주름살 많은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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