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에세이
보안검색대로 들어가기 전까지 끝없는 안녕을 보내는 부모님을 보는 일보다 더 힘든 순간은, 이륙 직후 점점이 멀어지는 한국을 창밖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따릉이를 타고 달리던 한강변, 매일의 아침을 열어주던 든든한 엄마의 밥, 어딜가든 병풍처럼 따라오던 서울타워 등 어제까지만해도 너무 익숙해진 일상이 좋았던 추억으로 카테고리를 바꾸는 바로 그 순간.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매번 반복되는 헤어짐에 매번 지겹게 고통받아야하는 일과 다름없다.
뉴욕으로 이민가방 두개 들고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아빠는 연신 줄담배를 피웠고 언제든 힘들면 다시 돌아오라고 말했다. 평소 감정표현에 어색하던 엄마는 연신 내 등을 도닥이거나 팔짱을 꼈는데,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그런 둘 앞에서 씩씩한척, 쾌활한척 연기했다. 그러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인천공항 카페에서 찍은 셀피엔 모두의 눈가가 촉촉했다.
몇년 뒤 학기중 겨울방학을 맞아 4주간 머물다 돌아오던 날도 생생하다. 아침 비행기에 새벽같이 서둘러 짐을 챙겨 나가는데, 미로가 가방 위에 가만히 앉아 식빵을 굽고있었다. 1월 새벽의 푸름으로 가득하던 시간, 한번이라도 더 쓰다듬어주고 싶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하고 떠나야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게 미로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몰랐지만.. 이때도, 나는 여전히 씩씩한 척을 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내내 울다가 지쳐 잠들고, 깨어나면 다시 울며 14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의외로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 6년(!)만에 찾은 서울에서 37일을 보냈다. 더이상 혼자 떠나지않게 됐지만, 여전히 나는 씩씩한 척을 했고 이륙 후 많이 울었다. 그마저도 남편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클로버를 돌보느라 더이상 감상에 젖을 틈도 없었지만.
다음에 헤어질땐 좀 덜 울수 있을까? 이제 헤어지고 만남이 일상이 된 우리인데, 좀 익숙해지지 않을까? 그건 그날들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다만 매번 더 확실해 지는 건, 과거의 섭섭함과 상처는 옅어지고 끝없는 고마움과 애틋함 그리고 사랑만이 더 깊어진다는 것. 떠나면서는 잘지내란 말 대신 내년에 보자고 인사를 했다. 확신은 없지만 마치 스스로에게 굳은 약속을 하듯이, 반드시 일어날 주문을 걸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