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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ep 03. 2021

타자와 연결되는 삶에 관하여

북리뷰  <아무튼, 비건>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제일 읽고 싶던 동시에,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소중히 읽어야지 싶던 주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오래전이다. 이젠 비건을 지향하는 남자 친구의 영향이 가장 컸고, 공장식 축산업의 병폐와 수익만을 향한 국가와 기업의 짜고 치는 캠페인 등 진실에 눈을 뜨게 해 준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음을 굳혀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물 애호가를 넘어 동물권 지지가가 되면서 더더욱 육식과는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주로 새우나 두부가 메인인 요리를 선택하고 피치 못할 땐 고기가 고명처럼 올려진 메뉴를 먹는 식. 그럼에도 가끔 '먹어봤자 아는 그 맛'이 못 참게 먹고 싶을 때가 생긴다. 곱창, 돼지갈비, 돈가스, 양념치킨 등인데 서울에 살 때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먹었던 메뉴들. 가족 없이, 한인타운에 가려면 마음먹고 나가야 되는 거리에 살면서 이런 음식들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나 자신에 너무나 쉽게 지는 데, 매번 위선자가 된 기분에 죄책감이 장난 아니다. 



그렇게 셀프 정신교육용으로 몇 달 만에 <아무튼, 비건>을 펼쳤다. 다른 아무튼 시리즈처럼 가볍게 읽히는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묵직하고 날카롭다. 게다가 첫 장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개념을 던진다. 바로, 타자화 시키기와 연결감. 


아이들의 세계에선 낯섦과 익숙함의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다. 
그러나 사회는 아이들에게 타자화를 가르치면서 타고난 연결감을 말살해버린다. 



김한민 저, 위고 출판, 2018 




책 속의 이 부분을 정리하자면  타자화는 우리와 남을 가르는 무서운 행위다. 질투나 숭배의 상향의 타자화(방구석에 누워있는 나/인스타그램 속 행복해 보이는 남), 무시와 배제의 하향의 타자화(직장에 다니는 우리/ 청소노동자) 두 종류가 있다.  특히 하향의 타자화는 흔히 누군가를 짐승 취급하는 '동물화' 기법을 쓴다. 예를 들어 사람을 동물에 빗대어 비하하는 온갖 욕설, 유태인을 짐승으로 여긴 나치 등. 타자화는 그래서 무섭다.  


저자는 이 타자화에 의해 철저히 남이 되어버린 동물들의 기본권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공기나 물, 빛처럼 인간이 원할 때면 언제든 공급될 준비가 된 운명은 과연 누가 정한 것인가? 비거니즘 라이프라곤 오로지 채식, 식습관 등만 생각했던 나에겐 단 한 번도 '연결 지어'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준 내용이다.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비건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직관적 연결 고리를, 

시민들이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이 책은 비건/ 비거니즘이 궁금한 이들이 일독하면 좋을 입문서이고, 나같이 결심을 단단히 하고 더 잘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겐 좋은 자극제다. 그 자극제가 이렇게 탄탄한 논리와 철학, 정보, 과학으로 잘 정리된 정보라면 더더욱. 비건에 대해 확신이 안 서는 이들에겐 저자의 단호함이 까칠함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치맥과 삼겹살의 나라인 한국에서 동물권과 탄소배출량, 지구온난화를 외치며 육식을 지양하자는 비건인에겐, 그 자체로 가시밭길 일터. 비건임을 밝히면 상식 이하의 질문으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은연중에 배척되는 상황들에 비건임을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화남이 낳은 단호함인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유사 홍길동의 심정? 



폭우를 피해 해발 531m 구례 사성암으로 피신한 소들. 출처:현대불교



랜선으로 전해 듣는 요즘의 한국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폭우에 폭염에 다시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로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와중에 폭우를 피해 절로 올라간 소들의 이야기가 한주 내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심지어 소들의 사진을 다운로드해서 간직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했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알고 부처님의 품으로 갔다고, 소들이 수영을 잘한다고 훈훈한 해프닝 정도로 웃고 넘겼지만, 내겐 이렇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소들에게 다가올 운명이 너무 뻔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피신으로 일생에 단 한번, 마음껏 우리 바깥도 걷고 신선한 공기도 마셨을 소들을 생각하며, 그나마로 위안이 됐길 바랄 뿐이다. 기쁜 소식은 이 뉴스로 간헐적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인데, 타자의 삶에 눈을 뜨고 그들과 연결된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알면 알수록, 단순히 '먹는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닌 비거니즘 라이프. 더 공부하고, 더 깨어있어서 이 변화에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서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철학자 레비나스 - 아무튼, 비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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