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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Apr 02. 2022

다 그렇고 그런 가족

[Film 1] 미국 소녀, 대만 2021, 펑아이 피오나 론



삶의 불확실성이 자기 인생을 짓밟을 때,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도 간혹 원망의 탈을 뒤집어쓰곤 한다.



자식 교육을 위해 ‘미국 찬가’를 부르던 엄마는

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자 기꺼이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


예기치 않은 엄마의 유방암 진단으로 대만에 돌아온 엄마와 두 딸 량팡이, 량팡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큰딸에게 엄마는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날 선 원망을 쏟아 낸다.



영화 소개란에는 2003년 사스 증후군의 유행 중 대만으로 돌아온 소녀의 적응기라 나와 있지만, 사스는 영화의 배경이 아니라 가족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위기로 가족의 결속력을 다지게 되는 중요한 변곡점 역할을 한다.


이 영화가 한국어로 제작됐다 해도 아무런 이질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교육을 위해 기러기아빠와 엄마를 자청하는 헌신적인 부모님, 가정통신문 부모님 서명란에 부모님 사인을 흉내내는 사춘기 소녀, 틀린 시험 문제 개수 만큼 회초리를 맞는 교실 풍경 등. 게다가 ‘가족’이라는 흔한 소재이다 보니 배우들이 중국어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만과 한국을 구분할 만한 경계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주제를 두고 꺼내 놓을 스토리가 소설 한 권 분량 안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이보다 허다한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 지난 신파로 다가오지 않고, 심장이 곤두박질쳐 땅바닥과 하이파이브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 또한 남들만큼 겪었기 때문일 테다.


현실에서 수십 번은 들었을 만한 대사 중 내 가슴에 가장 깊숙이 비수를 꽂은 대사는 ‘너희를 위해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나도 암에 걸리지 않았을 거야’라는 엄마의 원망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던 강한 엄마는 고된 항암 치료를 견디는 동안 자신의 보물을 원망할 정도로 약해졌다. 그 대사는 결국 엄마도 제 몸 아픈 게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보통 사람’이었을 뿐임을 반증한다.


딸의 최선과 엄마의 그것이 달라 서로를 질책하고 미워하며 ‘모진 말을 누가 누가 잘하나’ 시합을 펼치는 듯한 모녀의 모습이 데자뷰처럼 보인 건, 내가 이미 많은 시간을 기억 속에 묻고 잊었기 때문이리라.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팡이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기를 소망한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의문문이 ‘엄마도 그럴 수 있어.’라는 평서문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한 뼘 만치 성장한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에게 귀를 파 달라고 부탁하는 팡이의 대사가 '미안해'라는 사과의 말로 들렸다. 가장 약하고 다치기 쉬운 곳을 내어 준다는 뜻이고, 엄마 앞에서 무장 해제하겠다는 의미니까. 엄마의 무릎에 누워 죽지 말라 간청하는 팡이와 그런 딸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기시감이 느껴졌다.

나도 엄마를 만나면 귀를 파 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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