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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Apr 27. 2022

당신, 아직 거기 서 있나요?

[Film 2] 내가 못한 그 연애, 대만 2021, 서예정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한 ‘사랑의 법칙'중 하나다. '사랑의 법칙'이란 말을 뱉으니 유행 지난 책 제목 같기도 하다. 혹시 그런 제목을 가진 책을 서점에서 본다면 '요즘에도 책 제목을 이런 식으로 뽑는 출판사가 있다니'라고 험담하며 그 출판사의 앞날을 걱정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흔해 빠진 말이라도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거짓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영화의 여자 주인공인 궈친친은 줄곧 미간에 내 천 자 주름을 긋고 웃지 않는다. 5년 전, 자신의 삶에서 짝사랑하던 남자와 이복 오빠를 차단한 뒤 일에만 빠져 살아온 그녀의 얼굴에는 천 개의 짐을 진 듯 늘 어두운 표정이다. 마치 불발 된 다이너마이트를 두 손에 쥐고 있는 사람 같다.


여자 주인공 궈친친과 남자 주인공인 난즈양은 연인이 아닌 남매다. 아버지가 다른 동복 남매로 엄마의 첫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 난즈양이고,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이 궈친친이다.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돌려 보았다. 내가 대만 감성과 잘 맞는 편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난즈양을 이해하고 싶었다.


감독이랍시고 태블릿 PC 하나 들고 사람들에게 이상한 질문이나 하던 난즈양을, 사랑하던 여자가 자신의 딸을 낳았는데도 결혼과 아빠 되기를 거부하던 난즈양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처음 볼 때는 ‘저런 후레자식’이었고, 두 번 볼 때는 ‘적어도 딸은 책임져야지’했다가, 세 번 볼 때는 ‘모두에겐 자기만의 사정이 있지’라고 이해하게 됐다.


사랑했고, 자신의 딸을 낳은 여자는 ‘예전처럼’ 난즈양이 계속 CF 감독으로 살고, 자신은 아이를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난즈양은 ‘예전처럼’ 살면 불행할 자신은 어떡하냐고 되물었다. 내가 아니라 내 일을 사랑한 거냐고 하면서.


논어에서 사랑은 상대방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게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혔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살리는 삶을 살라’고 말하기는 참 어려워진다. 사랑이 변질되는 순간이다.


딸을 최우선에 둔 결정을 하지 않는 난즈양을 이해하기 싫었는데,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일이 늘었다. 이해하기 싫은데 이해되는 것들.


짝사랑하던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왜 자신은 하얗지도, 키가 크지도, 탐스러운 머릿결도 가지지 못했냐며 하느님을 원망하던 궈친친. 비비안 수를 좋아하는 그에게 ‘비비안 수가 그렇게 좋아?’하고 성질낼 수는 있지만, ‘너보다 비비안 수를 더 좋아하는지는 왜 안 물어봐?’하는 질문엔 대답할 수가 없다. 제3자가 보면 다 보이는데, 본인만 아무것도 못 볼 때가 있다. 자신은 그에게 그저 친구일 뿐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다.


그의 완전한 부재를 깨닫기보다 사소한 다툼이 유발한 절교를 가장해 그의 소식을 차단했던 궈친친의 마음을 알았을 때, 그녀 미간의 내 천 자가 안쓰러워졌다. 사실 궈친친은 그를 차단한 5년 내내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못한  연애 아니라 ‘연애였지만 연애인  알아채지 못했던  연애라는  뒤늦게 깨달은 궈친친의 눈물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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