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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Sep 25. 2024

#25 4차 항암 (2)

두 번째 검사를 앞두고

 밤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골반뼈가 쑤시더니 호중구가 올랐다. 호중구가 오르자마자 그토록 먹고 싶던 시원하고 달콤한 멜론을 먹었다.

 호중구가 낮을 땐 감염 때문에 식이제한이 있다. 무조건 익힌 것만 먹어야 해서 생야채 대신 굽거나 찌거나 볶은 야채, 생과일 대신 통조림 과일, 김치 대신 볶은 김치를 먹어야 한다. 이렇게 며칠 먹다 보면 속이 너무 느끼해 식욕이 뚝 떨어져 병원밥이 먹히지 않아 다른 음식을 찾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중구가 낮을 때 가장 안전한 음식은 멸균된 식품이 많은 편의점 음식이다. 항암 들어가기 전에 교육을 받았는데, 호중구가 500 이하로 내려갈 때는 신선한 재료가 들어간 김밥보단 삼각김밥이 더 안전하고, 죽집에서 파는 영양죽보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레토르트죽이 더 안전하고, 갓 나온 유기농 빵보다는 편의점에서 파는 빵이 더 안전하다고 한다. 물론 그 안에 크림이 든 것은 위험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지만!

 10년 전에 나갔던 글쓰기 모임에서 어떤 분이 쓴 극에서 암환자가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이런 설정은 과하다고 한 적이 있었고 나도 동의를 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암환자가 되고 보니 그 캐릭터는 더 이상 병원밥은 먹히지 않았던 호중구가 낮은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 4차 항암이 끝나고선 요양병원이 아닌 집으로 가고 싶었다. 올해 3월 27일 날 처음으로 응급실에 간 이후로 아주 잠깐의 퇴원을 빼고선 계속 병원에 있었으니...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다. 집에 강아지가 있지만 지금 호중구도 높고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회진 때 집에 가도 되는지 교수님에게 여쭤보았다. 하지만 교수님은 혹시나 호중구가 낮아졌을 때 감염이 되면 항암이 미뤄지니 집에 안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집에 너무 가고 싶다. 내 침대에서 자고 싶고, 배 까고 자는 글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고, 엄마의 김치전도 먹고 싶고, 내가 즐겨 입던 예쁜 옷도 입고 싶다. 그냥 무엇보다도 더 이상 환자이고 싶지 않다.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마음이 지치고, 병원이 지겹고, 무엇보다 슬퍼서 계속 눈물이 났다.


 4차 항암의 마지막 ‘루이나제’를 맞고 두 번째 중간평가를 위한 시티를 찍기 위해 오랜만에 팔에 두꺼운 바늘을 꽂았다. 조영제로 인해 어지러울 수 있다 하여 휠체어를 타고 시티실로 향했다.

 잠깐의 기다림 후에 내 이름이 불려지고 기계에 누웠다. 조영제가 들어가 혈관이 따끔하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검사를 위해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참고, 숨을 내뱉고 숨을 참으며 계속 기도를 했다.

 제발 하느님... 암이 모두 다 사라지게 해 주세요. 제발 중간평가가 좋아 지금 약으로 6차까지 하고 이 모든 게 끝나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 집으로 절 돌려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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