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오랜만에 구토가 멈춰 글을 쓸 수 있는 컨디션이 되었다. 오심만 없어도 정말 살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침대에 앉아 글을 쓸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6차 항암은 날 쉽게 보내줄 수 없다는 듯 거의 1차 때만큼의 오심과 구토를 선사해 주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영양제를 달고 위액을 계속 토해내면서 여기까지 왔다.
끊임없이 토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거의 다 왔어. 견딜 수 있어. 할 수 있어. 고통은 순간뿐이야. 지나간다. 경험해 봐서 알잖아. 다 지나간다.”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러다가도 너무 힘들고 서러워 “내가 왜 아파야 해” 라며 울기도 했고, 엄마한테 산속으로 도망가자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구토를 너무 많이 하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저 항암제를 피하고 싶단 생각에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안산으로 도망가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프기 전엔 글자랑 같이 안산 자락길을 걸었었는데... 지금은 병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곳이 되어버린 안산으로 노란 봉투 약이 찾아오지 못하게 도망가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거나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를 위로 올리기만 해도 어지러워 구토가 나왔고, 이런 나를 보며 주치의 선생님은 항암제 독성이 쌓인 것 같다며 뇌 MRI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당일날 급하게 잡힌 MRI였기에 언제 불려 갈지 몰라 팔에 두꺼운 바늘을 꽂은 상태로 계속 기다렸고, 나는 기다리다 잠에 들었지만 엄마는 자지도 못한 채 계속 검사실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 12시 40분이 지나서야 검사자리가 나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복부 MRI를 할 때처럼 귀마개를 하고 기계에 들어가 “우당탕탕 와이와앙” 소리를 30분쯤 들으니 검사가 끝이 났다. 다시 병실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었고, 그제야 두꺼운 바늘을 빼고 엄마와 둘 다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제 항암제 딱 세 번만 맞으면 되는 시점인데 주치의 선생님이 주말 동안 잠시 항암을 멈추자고 하셨다. 내 몸 컨디션이 회복이 되어야 하고 또 MRI 결과도 봐야 한다며 월요일 상태를 보고 다시 항암을 하자고 하셨다. 항암이란 게 참 웃긴 게 너무 하기 싫은데 미뤄지면 또 불안하다.
6월에 항암 설명을 들을 때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11월 말에 끝나는데 이렇게 스케줄대로 하는 환자들이 몇 없다고 했다. 항암 중간중간에 고열이나 감염처럼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생겨 항암이 미뤄진다고 했는데, 나는 다행히도 병실에 자리가 없어서 하루이틀 미뤄진 것 빼곤 스케줄대로 항암을 받아왔다. 항암을 쉬는 게 불안했지만 사실 내가 느끼기에도 항암을 받을 수 없는 컨디션이었기에 알겠다고 하고선 주말을 보내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번주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뮤지컬 ‘라흐헤스트’가 뉴욕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어 대표님과 작곡가들, 피디님이 뉴욕으로 출국을 했다. 작년엔 나도 함께 뉴욕에 가서 참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었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는 뉴욕이 참 고단하게 느껴졌는데 잠깐 들를 때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때도 그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는데, 병실에 앉아 있는 지금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젊은 혈액암 단톡방‘에 계셨던 환우 한분이 돌아가셨다. 처음 림프종이라고 진단받고 T세포 중에 어떤 아형인지 알아보는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T세포 환우분들의 블로그를 찾아봤었다. 그때 알게 된 분이었는데 블로그를 열심히 읽었기에 단톡방에서 만났을 때 나 혼자 속으로 반가워했었다.
나보다 어린 분이셨는데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매번 자극을 받았다. 고난을 헤쳐나가는 마음가짐이 너무 멋있고 기특하고 대견해 나중에 다 나아서 정모에서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몸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병원 아래에 있는 성당에 가서 다른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던 분, 마지막까지 교수님에게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며 하이파이브를 하던 분... 왠지 기적이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부고소식을 듣고 목놓아 울었다. 고통 없는 곳에서 좋아하는 운동 많이 하시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작가로 입봉을 하기 전, 나의 글은 많은 제작사에서 거절을 당했는데 대표님들은 “너는 고통 없이 살아와서 글에 깊이가 없다.”라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고통 속에서만 사람이 성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투병하면서 느끼는 삶의 소중함은 행복 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세상에 고통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픈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꿈 많은 청춘들이 암 때문에 꽃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런 세상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