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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Oct 01. 2021

매일 반복하는 것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 관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채우는 당신만의 습관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신세계 빌리브 매거진. 그들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전 지구적 유행병으로 인해 다들 발 묶인 지 오래지만 여행하는 사람들의 얘기에는 여전히 마디마다 흙모래가 박혀 있다. 주제가 무엇이든 배경이 된 장소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내가 가진 습관들에도 일일이 낯선 도시의 이름이 꼬리표로 붙어 있다. 그곳에서 새로 얻었거나, 전부터 있던 것이 여행하며 딱딱하게 굳어진 것들이다.

낯선 것들에 둘러싸인 아침. 자연스레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잇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여행지에선 대체로 해가 뜨기 전 잠에서 깬다. 양쪽 눈 뜨는 것보다 우선인 일은 머리맡 더듬어 스마트폰 찾기. 음악 앱의 ‘아침’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목록을 서너 번 위로 밀어 올린 뒤 손 끝에 닿는 것을 선택한다. 좋아하는 곡들만 모아뒀으니 무엇이 나오든 상관없다. 가사 없는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지긋이 눈 감은 채 그대로 흘려보낸다. 이 나이 먹고도 ‘조금만 더’를 외치는 스스로에게 허락한 추가 시간이다. 늘 너무 짧은 첫 곡이 끝나고 다음 노래가 시작되면 팔다리를 휘저으며 맨살에 닿은 침구의 감촉을 마지막으로 만끽한다. 처음엔 트렁크 속 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이제 알몸으로 잠들고 일어나는 것이 규칙처럼 되어 버렸다.

여행지에서 아침마다 토마토를 먹다 보면 문득 한국 토마토가 유독 맛이 없어 집에선 먹지 않는 건지 궁금해진다. @러시아 모스크바 / 이탈리아 로마

샤워 후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유독 날씨 운이 없는 여행 작가에겐 그날의 성패를 가늠하는, 사뭇 긴장되는 시간. 그다음엔 여전히 낯선 창 너머 풍경을 보며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메뉴는 전날 시장에서 사 온 과일로 토마토일 때가 많다. 간밤에 먹다 남은 빵과 치즈를 곁들이기도 한다. 테이블도 접시도 없이 방 안을 어슬렁거리며 먹는 밥이지만 근사한 호텔 조식 부럽지 않다. 이제 막 밝아 오는 여명의 낭만도 있지만 그보단 눈 뜨기 전부터 이어지는 아침의 노래들 공이 더 크지 않을까.

익숙한 노래가 낯선 풍경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감동을 안겨 주기도 한다. 폭설 속에서 들었던 영화 어바웃 타임의 OST가 그랬다. @러시아 모스크바
구식이지만 가끔 그때 그 방법으로 꺼내 듣는다. 이것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이 버릇 아닌 버릇의 시작을 찾자면 수년 전 얼어붙은 겨울 도시에서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 기온이 영하 20도를 밑돌던 날, 호텔 로비 문을 열자마자 얼음가루 섞인 공기가 순식간에 뺨을 할퀴고 가슴과 배를 차례로 채웠다. 난생처음 겪는 매서운 추위에 흠칫 놀랐지만 흩뿌리는 눈발과 뿌옇게 피어오른 입김, 눈앞에 펼쳐진 이색적인 풍경에 이내 놀이동산 입구에 들어선 아이처럼 신이 났다. 그때 귀에 건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어느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 아침 플레이리스트의 1번 트랙이 됐다.

 리스트는 빠르게 채워졌다. 처음으로 연인에게 선물 받았던 CD, 헌책방에서 먼지 후후 불어가며 겨우 찾았던 추억 속 카세트테이프, 인생 영화의 OST 속 노래들을 생각날 때마다 더했다. 어느덧 수십 곡이 된 리스트에는 내 취향과 시간이 묻어 있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 플레이리스트는 이후 다른 풍경, 날씨, 숙소를 배경으로 반복됐다. 매일 같은 노래를 들으며 비슷한 순서로 움직이고 비슷한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과정이 자칫 누군가에겐 따분해 보일지 몰라도, 때때로 그 익숙함이 낯선 도시에서 꼭 필요한 위로가 됐다.

배경은 다르지만, 그 속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했다. 이내 편한 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체코 프라하 / 스페인 바르셀로나

문유석 작가의 책 《쾌락독서(문학동네, 2018)》에는 작가의 독특한 일상 여행법이 있다. 평생 꿈꿨던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의 최종 목적지를 서울이 아닌 발리, 일정을 11개월 뒤로 정하고 귀국한 것. 일상이 있는 서울은 자연스레 일 년 가까이 머무는 중간 기착지(스톱 오버)가 됐다. 그리고 11개월간 그의 일상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다음 비행을 앞둔 여행자의 마음이 그를 관대하고 여유롭게 만들고,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일상을 여행 사이에 끌어들인 기발함과 그것이 가져온 효과 모두 흥미로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여행이 요원한 요즘, 나 역시 전 여행과 다음 여행 사이에 잠시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행지에서의 루틴을 일상 속에 하나씩 적용하고 있다. 아침의 노래들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아침마다 과일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 요 근래 ‘산책’과 ‘독서’ 플레이리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종종 귀갓길에 마트에서 초콜릿 푸딩과 맥주 한 캔 사 오기도 한다. 종일 끼니 거르고 분주히 광장과 골목을 누빈 끝에 맛보는 그날의 달콤 쌉싸름함에는 미치지 못해도, 하루의 마무리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낯선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이었던 선이 이제 반복되는 일상 속 자칫 외면할 수 있는 어제와 오늘의 나를 연결하고 있다.

꾸준히 무언가를 반복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지난여름 노을 보는 재미로 보낸 것처럼. @대한민국 서울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매일 반복된다면 그것이 요즘 나를 가장 풍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루의 시작과 끝 아니면 중간중간 떠 있는 내 습관에 눈 맞추고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틈 날 때마다 들을 정도로 어떤 노래에 푹 빠져 있다면 양쪽 눈 뜨기 전에 그 곡을 틀고 샤워하는 동안, 옷과 향수를 다 고를 때까지 몇 번이고 흐르게 두자. 예산 안에서 가장 좋은 스피커를 장만해 침대 머리맡에 두는 것도 좋겠다. 퇴근길에 버스와 지하철 창 너머로 보이는 노을이 요즘 유일한 낙이라면 점심때쯤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그 시간에 맞춰 퇴근을 늦춰 보자. 전망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몇 정거장 되돌아가는 수고를, 근사한 장소에 미리 가서 노을을 맞이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자.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에 가려 티가 나지 않을 뿐 우리는 매일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습관 또는 루틴이라는 이름의 어떤 것들을 반복하면서.

당신은 무엇을 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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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팅은 신세계건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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