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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Oct 22. 2021

화면 없는 디지털카메라
라이카 M10-D

01. 때론 가슴 뛰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Digital body. Analog soul


 말이야 그럴듯해도 절대다수의 눈에 이 카메라에 붙인 설명은 허울뿐인 과시일 것입니다. 화면이 없는 디지털카메라라니. 당장 온갖 불편한 상황들이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찍은 사진들은 어떻게 볼까? 카메라 설정은? 배터리와 메모리 카드는 어떻게 관리하지?” 하지만 이 카메라는 그런 질문들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사진을 즐기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면 본질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사진이 좀 더 즐거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입니다.

 2018년에 출시된 라이카 카메라 M10-D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에 빠르게 자리를 빼앗기고 이제 소수 프로페셔널과 취미 사진가의 영역으로 남은 디지털카메라의 현주소 그리고 ‘사진보다 사진기가 좋은 이유’라는 주제를 이보다 잘 설명하는 카메라도 드물 것 같습니다.

 더 나은 것보다 가슴 뛰게 하는 것이 정답일 때가 있습니다.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화면을 과감하게 빼 버린 이 카메라의 답답함과 불편함이 그때 제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름 뒤에 붙은 D가 Das Wesentliche, 본질을 의미한다는 설명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사양 

디지털 RF 카메라

2400만 화소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 (36 x 24 mm)

ISO 100 - 50000

셔터 속도 1/4000 - 125 초

초당 5매 연속 촬영

0.73배 광학식 뷰 파인더

Wi-Fi 무선 통신

조용한 셔터 유닛

1300mAh BP-SCL5 배터리

디스플레이 제거

동영상 촬영 불가


139 x 38.5 x 80 mm

660 g


 M10-D는 2017년 출시된 M10의 여러 파생 모델 중 하나로 대부분의 사양을 공유합니다. 유일한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디스플레이가 제외됐다는 것. 전원 레버 방식의 변화, 노출 보정 다이얼과 기능 버튼, 필름 카메라의 와인딩 레버를 형상화 한 썸 그립 등은 모두 화면의 부재에 따른 것들입니다. 거기에 M10-P에서 추가된 조용한 셔터 유닛이 적용됐습니다. 전체적인 사양은 M10보단 M10-P 모델과 더 가까워서 화면이 없는 M10-P 모델로 보는 게 보다 정확합니다. 수량이 제한된 한정판은 아니지만 전량 선 주문 후 생산 방식으로 판매됩니다.


 디자인 

라이카 M10-D의 전면부는 M10-P와 동일합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같은 빨간색 원 로고를 삭제한 대신 상판에 각인이 추가돼 있습니다. 거기에 D 모델의 콘셉트에 맞게 디스플레이를 제거하고 전원/노출 보정 레버, 엄지 그립과 기능 버튼을 더한 것이 특징입니다. 모델마다 크고 작은 수정이 있지만 사실 20세기 중반의 필름 M 카메라와 비교해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는, 관심 없는 사람이 보기엔 그게 그것 같은 생김새입니다.

 M10-D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뒷면. 화면은 물론 버튼 하나 없는 매끈한 모양에 원형 다이얼을 배치했습니다. 다이얼은 두 개로 바깥쪽은 전원과 무선 통신 기능을, 안쪽은 노출 보정을 담당합니다. 전작 격인 M-D 모델은 후면 다이얼에서 ISO 감도를 설정할 수 있었는데, 상단에 전용 ISO 다이얼이 배치된 M10 시리즈의 특징을 반영해 다이얼의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그 외에 광학 뷰파인더와 조작 다이얼 한 개가 있습니다. 오른쪽 위에 있는 다이얼은 시간 설정 등의 기본 기능을 담당하면서 전자식 뷰파인더 Visoflex를 연결했을 때 좀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합니다.

M10-D의 특징을 한 장에 보여주는 사진
와인딩 레버를 따라한 썹 그립은 놀랍게도 아무런 기능이 없습니다.

 필름 카메라의 와인딩 레버에서 차용해 온 엄지 그립은 출시 직후까지 저 레버가 담당하게 될 기능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습니다. 곧 아무 기능 없이 그저 필름 카메라의 그것을 오마주 한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실망했지만 M10-D의 아날로그 감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안정적으로 카메라를 쥘 수 있는 목적에 충실합니다. 당기는 동작에 적당한 탄성 그리고 끝까지 젖혔을 때 기분 좋게 걸리는 느낌이 있어서 자꾸만 당겨보게 됩니다.

 셔터를 제외한 이 카메라의 유일한 버튼은 화면의 부재로 인하 불편함을 일부 해소합니다. 촬영 중 버튼을 누르면 광학 뷰 파인더에 배터리와 메모리카드 잔량을 표시합니다. 다만 촬영 가능 사진 수가 999까지라 활용도는 떨어집니다. 그 외에 본체 시간 설정, 펌웨어 업데이트, 센서 청소 모드 등에도 이 버튼이 사용됩니다.

 화면이 없어 발생하는 단점들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라이카는 무선통신을 이용한 원격 제어를 선택했습니다. LEICA FOTOS 앱으로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연결하면 크고 선명한 화면이 생기는 것이죠. 이를 통해 원격 촬영은 물론 촬영 설정과 카메라 메뉴 접근 등이 가능해집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한 두 번 써보면 배터리 소모와 발열 등의 이유로 가급적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M10-D와 M10 그리고 MP 

 모태 격인 M10과 비교하면 전면 디자인 및 크기가 같습니다. 다만 디스플레이와 버튼 쪽 돌출부가 사라진 덕에 손에 쥐었을 때의 체감 두께가 다소 얇습니다. 거기에 천연 가죽 그립의 촉감이 더해져 한결 쾌적합니다. 빨간색 로고의 유무는 M10-P와 M10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뒷부분은 디스플레이 유무로 인해 큰 차이가 있습니다. 뷰파인더 옆의 문구 역시 LEICA CAMERA WETZAR가 삭제되고 MADE IN GERMANY만 남았습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다이얼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라이브 뷰, 카메라 설정, 각종 정보 확인 등을 M10의 장점, 보다 클래식한 외형과 천연 가죽 그립의 감촉, 상단 레버의 조작감을 M10-D의 장점으로 평할 수 있겠습니다.

 대표적인 필름 카메라 MP와의 비교입니다. 이렇게 보니 MP가 현재까지 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좀 더 작은 크기에 밀도 있게 배치된 요소들, 블랙 페인트의 아름다움까지. 하지만 M10-D 역시 필름 M의 특징과 감성을 디지털에서 꽤 그럴듯하게 구현했다 평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후면 다이얼과 와인딩 레버, 상단 ISO 감도 다이얼 등 조금씩 아이덴티티를 확립해가는 디지털 M의 변화들이 흥미롭습니다.

 특유의 외형 때문에 M10-D는 외형은 물론 사용자 경험 역시 필름 카메라와 꽤 비슷합니다. 화면이 없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곧 적응하고 나면 기존 디지털 M 시리즈와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가 빛을 발합니다. 아무 기능 없이 그저 감성 자극 용으로 배치한 와인딩 레버, 시리즈 중 유일하게 천연 가죽으로 덧댄 볼커 나이트의 촉감도 가슴을 뛰게 합니다. 이런 것이 라이카에서 말하는 ‘아날로그 소울’일까요?

 이 카메라를 사용한 지 제법 오래됐지만 아직도 촬영 후 자꾸 카메라 뒤판 어딘가를 엄지 손가락으로 누르게 됩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편하게 사진을 즐기고 있었다는 거겠죠. 인화 전까지 궁금해해야 했던 필름 시절보다.


다음 포스팅부터 본격적으로 라이카 M10-D의 사진 그리고 경험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misty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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