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바스 Jun 11. 2021

이 웹소설은 그런 작품 아닙니다 #03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 만들기

5월의 마지막 주가 되니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에어컨이 아직 정상 가동되지 않는 시기이기에 사무실은 찜통이었다. 편집을 위해서는 하루 종일 헤드폰을 쓰고 있어야 하니 너무 힘들었다. 이럴 때면 50분에 한 번씩 바람을 쐬기도 하고 주변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 오곤 했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게임 속 힐링 포션처럼 편집 집중력을 회복시켰다.


어느덧 편집도 중반을 달리고 있었다. 내레이션과 극화를 분리해서 녹음하느라 편집의 상당한 공수가 들었다. 보통 오디오 드라마에서는 대본 작업을 통해 나레이션을 대부분 각색하여 극화 형태로 만든다. 다만 <***> 웹소설은 나레이션이 중요 포인트였다.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각색이 불가능했다. 최대한 나레이션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작해 나갔다.


중요 배역을 담당한 배우님과 성우님은 안정적으로 배역을 소화해 갔다. 이제는 간간히 등장하는 멀티맨 역할의 조연 성우님 섭외가 필요했다. 대사 분량이 워낙 짧고 잠깐잠깐 등장하여 녹음 중반부쯤 하여 섭외를 시작했다. 유머가 많고 다양한 역할에 재능 있는 성우님이었던 *** 성우님이 떠올랐다.


당연, 조연을 맡은 성우님을 캐스팅할 때 앞전의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절대 그런 작품 아니에요! 네버 네버!", "이 웹소설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라고.


당연 성우님도 흔쾌히 출연에 약속해 주셨다. 다만 1인 30역 가까이되는 배역을 담당해야 했기에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중간중간 등장하는 배역들은 감초 같은 역할이었다. 작품의 리프레쉬를 담당하는 역할이랄까? 재미있는 성대모사와 상황 연기로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중요 역할이었다.  


다역을 맡은 성우님은 여러 명의 택시기사를 연기해야 했다. 유독 주인공이 택시를 타고 자주 이동했는데 신기한 건 꼭 택시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 참 기사님 빨리요, 빨리요!"

"여기만 지나면 금방이여. 아 그렇게 빨리 가면 나 벌금 내야 는데"


다역을 맡은 성우님은 여러 택시기사를 연기했다. 더 연기했다가는 동료직원, 형, 마트 아저씨 등 택시기사와 목소리가 동일하여 겹치게 된다. 주인공이 매번 동일한 택시를 타는 것도 무리였다. 몇 문장 안 되는 내용으로 추가 캐스팅을 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니 택시기사는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생각하기로 '나는 이래 봐도 러시아 유학파 출신 연극연출가가 아닌가?'라며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담당자님의 검수를 통과해야 한다. 당시 깐깐하기로 소문난 담당자님은 모든 회차를 초단위로 들어보고 피드백을 주고 있었다. 연출 효과, 음악, 발음, 발성, 문장 하나하나 살피고 분석하여 뜯어보는 분이셨다. 작품의 퀄리티를 위해 매일 장문의 피드백을 작성하여 메일로 보내셨던 분이다.


피드백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들키면 또 얼마나 부끄러울까? 메일에는 담당자님 외에도 팀장님, 대표님, 담당자님 팀장님까지 전부 포함돼 있으니 모든 상황이 오픈된다. 그래도 연기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니 두려울 게 없었다. 아무도 없는 시간 녹음실을 예약하고 마이크 앞에 섰다.


오랜만에 연기를 하니 어색하다. 두 문장밖에 안되는데 혼자 녹음실 마이크에 앉아 1시간이나 녹음했다. 녹음된 파일을 대형 스피커로 듣고 또 들으며 분석했다. 톤은 어떤지, 발성은, 발음은, 내 목소리는 어떠한지 하나 한 들었다. 어디서 사는 택시기사로 가족은 몇 명이고 나이 때는 어떨지, 개인택시인지, 회사택시인지 세밀한 부분까지 고민하여 연기했다. 그래도 혹시나 내 연기가 들킬까 하는 마음에 강남의 배경 소음 까지 깔고 자동차 창문을 내리는 효과음을 넣어 티가 안 나도록 다양한 소음으로 해당 장면을 믹싱 했다. 그렇게 주의를 분산시켰다. 편집을 마치고 내가 택시 운전기사로 연기한 회차 파일 검수를 요청했다.


깐깐했던 담당자님은 메일을 받고 대략 2일 후 피드백을 보내왔다. 다행히 담당자님은 눈치를 못 채고 넘어갔다. 분명 미팅과 전화 연락으로 종종 내 목소리를 듣고 했을 텐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검수 완료 메일을 받는 순간, 짜릿함에 '우후~'하며 종종 더 작품에 등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다. 마땅히 할 배역도 없었다. 후반부에는 대부분 주인공들의 두 명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었고 주변 등장인물은 내레이션 처리되어 대사 자체가 없었다.


다행히 7월을 끝으로 20시간 가까이 되는 웹소설이 잘 마무리되었다. 길어진 편집 시간으로 야근이 잦게 되자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담당자님은 다음 대형 프로젝트의 웹소설이 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길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웹소설은 그런 작품 아닙니다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