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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Jul 11. 2022

800원짜리 러시아 소시지

내가 발견한 가장 저렴한 러시아 소시지

유학생활중 공부보다 힘든 것은 돈을 아껴 쓰는 것이었다.  달에 정해진 생활비 10,000루블(당시 한화 40 ) 가지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교통비, 생활비를 모두 충당해야 했기에   푼도 허투루   없었다. 이것저것 제외하고  달에   있는 돈은 정확히 8,000루블(당시 한화 32 ) 정도였다.


생활비 사용범위를 보면 가장 지출이 컸던 부분은 먹는 것이었다. 부담이  만큼 먹는 것에서 최대한 아끼고자 주변 마트 전단지를 수시로 확인하고 세일 품목과 제품 가격을  마트와 비교해가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식단을 짰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되지 않았기에 무조건 아침, 점심, 저녁은 직접 요리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자주 모았던 '딕시' 마트의 전단지

연극대학교의 정규 수업은 ~ 아침 9시부터  10 30분까지 매일 있었다. 기숙사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을 해 먹을  있는 시간이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12시가 다되었기에 피곤에 절어 요리해 먹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식사 대용으로 가장 싼 러시아 흑빵과 치즈를 먹어 봤지만 빵은 밥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빵을 먹으니 한 시간만 지나도 배가 고프고 몸에 기운이 쫙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역시나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일까? 흰쌀밥에 고추장만 비벼먹어도 밤 12시까지 거뜬히 버텨 내는 것을 보고 무조건 밥을 먹어야 힘든 학교 생활을 버틸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문제는 어떤 반찬을 싸들고 다녀야 하는가 였다. 저녁까지 반찬통에 넣어두어도 상하지 않으며 영양가도 충분한 음식이 필요했다. 귀찮다고 대충 먹다가는 병나기 십상이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니 야채와 과일도 간간히 챙겨 먹을 필요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기류의 반찬도 종종 섭취해야 한다.


기숙사에서 신선한 음식의 상태 보존을 위해서는 먼저 냉장고를 구입해야 했다. 수소문 끝에 40년도 넘은 소련 시대 냉장고를 500루블(당시 한화 2 ) 구입했다. 거의 골동품에 가까웠지만 사용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고 냉동실까지 시원하게  돌아갔다. 덕분에 가장  걱정거리였던 야채 섭취는 냉동 야채 슬라이스로 대신했다. 삶거나 볶아먹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파프리카, 양파, 그린빈, 브로콜리, 옥수수  다양한 야채가 골고루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당시 사용 하던 소련시대 냉장고와 비슷한 모델


문제는 고기였는데 냉동해서 먹는 건 한계가 있었다. 아침마다 요리할 때면 꽝꽝 얼어버린 고기를 요리하는 것도 문제였기에 고기를 당일 구매하지 않는 이상 먹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냉장보관이 용이한 고기를 대체할만한 식료품이 필요했다.


고기 맛을 가진 식료품은 무엇이 있을까? 보관이 용이한 것은 통조림과 소시지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기 통조림은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고 특이한(?) 향신료가 섞여 있어 먹기에 불편했다. 다행히 러시아에서는 가공 소시지가 잘 발달되어 브랜드와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었다. 가격대도 워낙 다양하여 좋은 생활비 절약 전략을 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길로 마트로 바로 달려가 소시지 코너를 확인했다.


어떤 소시지를 고를까 신중하게 확인하던 찰나 작은 소시지 10개를 20루블(당시 한화 800원) 파는 것을 발견했다. 제품 이름도 믿음직했다. '러시아 소시지'(сосиски российские) 나라 이름까지 내건 소시지였다.  10개가 들어있으니 하루에 2개씩 꺼내먹으면 5 동안 먹을  있을 것이고 가격도 저렴하니 기분  때면  개더 추가하여 3개까지 먹어도 전혀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비쌌지만 가장 좋아 했던 러시아 소세지 브랜드 '깜뽀모스'


당장  길로 소시지 한팩을 사들고 기숙사로 향했다. 800원짜리 소시지에 맛은 어떨지 궁금하여 집에 오자마자 소시지 하나는 기름에 굽고, 하나는 삶았다. 거기에  조금과 고추장을 비벼 김을 꺼내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 제일 먼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 소시지는 전혀 소시지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분홍 소시지 같다고나 할까나? 양은 도시락에 들어가는 말캉말캉한 소시지랑 식감이 비슷했고 고기의 (?)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기름에 튀기면  맛있다고는 하는데... 뭐랄까? 이건 소시지가 아니었다. 소시지 형상을  짭짤한 밀가루 막대기 같았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인 걸까? 그건 그렇고 이 남은 소시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지금 내 상황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어떻게든 맛있게 먹을 방법을 찾아 전부 먹어야 한다. 그래도 이왕 먹을 거 맛있게 먹고 싶었다. 스치는 생각에 카레에는 어떤 걸 넣어도 전부 맛있었기에 당장 카레를 만들었다.  냉동 야채와 사온 소시지와 곁들여 볶고. 거기에 특별히 좋아하던 일본 카레를 넣어 만들었다. 당연 카레 맛은 좋았지만 곁들여 먹는 소시지는 전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800원짜리 소시지를 먹고 멘탈이 붕괴되었다. 적은 생활비를 꾸역꾸역 쓰겠다는 나 자신의 모습이 하찮아 보이기도 했다. 엄마에게 전화하여 생활비 좀 올려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깟 소시지 때문에 내 유학 생활에 세운 목표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목표한 금액을 가지고 꼭 한 달의 생활을 보람차게 살아내고 싶었다.


가장 좋아했던 마트 '딕시' 회원 카드까지 만들만큼 자주 갔다.


  이후로 소시지에 대한 철학이 바뀌게 됐다. 다른  아끼더라도 소시지만큼은 너무   사지 말고 적당한 가격의 것으로 사기로 했다. 맛이 없으면 아무리 싸도 먹을 수가 없었고 소시지에    아낀다고 먹는 즐거움까지 포기할  없으니 말이다. 소시지뿐만 아니라 이날 이후로 절대로 제일  물건은 절대 구매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무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원효대사처럼 해골 물을 맛있는 물이라 생각하고 마실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하다. 버스를  타고 걸어 다니는 수고로움이 있다고 한들, 양말과 활동복에 빵꾸가 나서 꼬매 더라도 먹는 것에을 아끼지 않으리라.


아무튼 싼 게 비지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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