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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욱 Jul 04. 2022

그 업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바틀비는 말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1853년 당시에도 그렇고 2022년 현재에도 회사에서의 바틀비는 특별한 존재다. 지난 10여 년간 공공 영역에서 회사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나는 몇 번 바틀비와 같은 직원을 본 적이 있다. 회사는 그들을 부적응자, 개인주의자, 희생정신이 없는 사람, 조직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 등등의 수식어로 분류했다. 나 역시 회사의 뒤에 숨어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열심히 증명했다. 1853년 뉴욕의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그랬지만 2022년 현재 대한민국 사무실에서도 바틀비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을 뿐,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동경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한테 아쉬운 소리,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럴 바에는 내가 조금 손해보고 말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이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거나, 심지어 할 수 없는 일들을 거절하지 못해 덥석 붙잡고 안절부절못하던 날들이 많았다.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했고,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회사에 입사를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엄연히 타 부서 직원에게 협조를 요청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일도 내가 혼자 해결했다.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불편을 겪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친절을 베풀고 배려에 앞장서는 사람이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삶의 대부분의 순간에서 싫어 혹은 no! 를 내뱉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매사에 긍정적이며 언제나 yes맨이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어야만 했다.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어느덧,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겪고 나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결코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지나친 친절은 배려가 아니라 쓸데없는 오지랖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꼈다. 다른 사람 몫까지 일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무능력이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몇 명의 바틀비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깨달았다. 아니,라고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연습을 했다. "좋은 생각입니다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라는 식으로 이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no,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씩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름대로 잘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만난 몇 명의 바틀비를 이야기해보면, 그들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개인과 조직-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했다. 회사나 상급자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 맞춰가려 노력하기보다는 자기 스타일대로 생활했다. 거리낌 없이 가장 늦게 출근해서 가장 빨리 퇴근했다.(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하급자가 가장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 정리를 하고, 마지막 문단속을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상당히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본연의 업무가 아니면, 단호히 no라고 말했다. "아니요, 제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회사에 무슨 든든한 뒷배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뒷배는 자기 자신이었다. 회사에 충성해서 남들보다 먼저 승진을 하고 권한이 많은 자리에 앉아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느냐 으스대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일하는 만큼 대가를 받고 그만큼 자기 인생을 영위해 나가는 것. 즉, 자기 속도로 본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직장은 나고, 내가 직장이다. 고로 회사는 나의 모든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내가 그랬다. 어느 학교를 다니는 것이 오랫동안 나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큰 세계였다면, 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회사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나는 회사의 명함이 유일하게 나를 규명해주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업무로 만난 사람이 아닌, 사석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명함을 건네고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반대로 첫 질문은 언제나 무슨 일을 하느냐,였다. 직업이 곧 나고, 회사가 곧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타인을 이해하는데 직업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버지는 평생직장에 매진했다. 직장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 여겼다. 낮과 밤, 요일을 가리지 않고 출근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쉬지 않고 일했고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빈소 가장 앞에 걸려있는 회사의 근조기 하나였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는 회사였지만 회사는 결코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회사는 남았다. 아버지의 인생에 남은 것은 자신이 아니라 회사였다. 아버지는 사라졌지만, 회사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돌아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회사나 직업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티브이에서 자주 보게 되는 오랜 노력으로 한 분야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스토리에 열광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나는 조금씩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바틀비를 목격하게 되었다. 바틀비는 왜 "안 하는 편"을 선택했을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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