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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욱 May 12. 2022

회사야, 미안하지만 그 일은 내일이 아니야


번아웃 burnout syndrome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이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연소 증후군', 혹은 `탈진 증후군'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쯤은 슬럼프가 온다. 번아웃도 슬럼프 중에 하나다. 나는 자주 번아웃이 온다. 무엇이든 쉽게 지치는 성향 탓도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가장 크다.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상급자에게는 결재를 받고, 동료와 타 부서에 협조를 받고, 하급자에게는 설명을 해줘야 한다. 모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그나마 덜 힘들겠지만, 대부분의 과정 곳곳에서 장애물이 등장한다. 때로는 돌아가거나 피할 수도 없는 커다란 암초를 만나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일들이 누적되면 반드시 번아웃이 온다. 증상의 경중이 다를 뿐 아픈 건 매한가지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런 종류의 번아웃을 영원히 벗어날 수는 없다. 번아웃을 적절히 다스리며 회사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휴가는 예방주사다.

먼저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근로기준법으로 정한 노동자의 권리 연차 휴가다. 물리적으로 내 몸을 회사에서 분리시키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치료제다. 도시의 소음과 매연에서 벗어나 햇살이 부서지는 숲 속에 앉아 멀리 뻐꾸기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진향 커피를 즐기는 상상만 해도 치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휴가는 고작해야 일 년에 20일 남짓. 중간중간 집안 행사 등의 일들을 해결하기에도 부족하다. 또한, 번아웃이 오고 나서는 산이나 바다로 휴가를 다녀와도 말끔히 치료되지는 않는다. 휴가는 음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편의점에 가면 살 수 있는 각성 음료. 잠깐의 효과가 있을 뿐, 결코 회사생활의 번아웃을 이겨내는 수단이 될 수없다. 휴가는 번아웃이 오기 전에 질병의 예방차원에서 주기적으로 맞는 예방주사로 활용, 적절히 사용해 번아웃이 오더라도 충격을 줄이자. 장기간의 휴가도 좋지만, 점심 휴게시간을 붙여 1~2시간 정도 잠깐의 외출이 생각보다 좋은 효과를 낸다. 오전의 피로와 오후의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준다. 하루라도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휴가보다 확실한 방법은 평상시 마음가짐이다. 나는 업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커피를 마시고, 껌을 씹고, 음악을 듣는 것도 그중에 하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건 마음이다. 나는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실제로 꽤 오랫동안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야 말로 최상의 치료제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회사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중에 하나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자"였다. 한때는 회사가 곧 나 자신이며, 일이 나의 모든 것이라고 여기며 회사생활에 몰두할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벗어나 회사라는 공간으로 이동한 대부분의 사회초년생들이 그러할 것이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나의 정체성을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게 10년을 회사에 몰두했다. 나름의 성취감으로 도취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남는 것은 회사의 일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회사가 곧 나고, 내가 곧 회사라는 마음으로 일 했다. 회사의 성과가 내 성과인 것처럼 기뻐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내 것을 빼앗긴 것처럼 화가 났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유관기관의 사례를 조사하고 연구보고서 등을 공부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힘들지 않다고, 오히려 즐겁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자기기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몸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일의 즐거움이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로 망가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독한 커피와 술로 몸의 신호를 무시했다.    


완전히 번아웃이 오고 나서, 오로지 일뿐이었던 내 생활을 돌아봤다. 내가 그동안 일에 온 힘을 쏟은 이유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았던 일에 몰두하고 전문가로서의 삶을 영위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동경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한 가지 일에 올인하면 금방 지쳤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로 살아보자고 다짐하고 어떻게 살아야 나로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먼저 일은 그냥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소득으로 내가   있는 하고 싶은 다양한 것들을 하자. 그리고 최대한 내려놓자. 주어진 일만 주어진 시간에 성실히 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회사나의 일부일 , 절대 전부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우선 몸과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다른 직원이 상을 받거나, 다른 부서의 업무실적이 우리 부서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전처럼 조급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너무나 당연한 생활을 이어갔고, 그 덕분에 규칙적으로 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이 생겼다. 도서관을 가서 책을 읽거나,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삶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 이외에 나에게 집중하고 5년 후, 10년 후에 변해 있을 다양한 나를 상상하고 꿈꾸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비겁하게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해 얼마든지 비겁해지기로 했다. 회사일은 회사일이지, 결코 내일이 아니다. 일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나를 바꿀 수는 없다. 나는 한 사람뿐이고, 내 인생도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일로 성공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갈 것이다. 죽을 때까지.


회사야 미안하지만, 그 일은 내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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