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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an 17. 2020

<라 플로르>를 보고 '영화의 재미'에 대해 생각하다

<라 플로르> 포스터. 빨간 선들은 여섯 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어떻게 뻗어가는지를 나타내는데, 완성된 모습이 마치 꽃(la flor) 같다. (출처: 다음영화)



<라 플로르> Part1 을 보았다. <라 플로르>는 "여섯 개의 독립된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복합 서사"로 이루어져 있는 아르헨티나 영화로, 총 808분이다. 내가 본 Part1 만 해도 226분이나 된다는. 그치만 지루하기는 커녕 다음 신(scene), 다음 시퀀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다.


오프닝에 감독이 등장해 이 영화의 플롯을 친절히 설명해주는데,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통틀어 같은 네 명의 여자 배우가 등장하고 이들은 각 에피소드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한단다. JIFF 프로그램 소개에 따르면 "1인 4역으로 펼쳐지는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진행됨에 따라 광범위한 세계를 포착해 간다"는데, 에피소드는 여섯 개인데 1인 4역이라면 어떤 에피소드끼리는 겹치기도 하는 건가? Part1 에서 본 열린 결말의 두 에피소드가 혹시 다음에 이어지기도 하는 건가? 궁금해 죽겠다. 다 떠나서 네 배우의 두 에피소드에서의 다른 캐릭터 연기가 참 훌륭하고 인상적이어서 그들의 다른 연기도 고대되는 마음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의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기획전을 통해 본 건데, 안타깝게도 Part2 와 3 은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다. Part1 의 두 에피소드는 개별 영화라 생각해도 부족할 거 없이 흥미로웠지만, 마지막에 '이어진다'는 자막을 보니 몸이 막 간지러웠다. 이 영화 전체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되고 각 에피소드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게 될지 궁금해 죽겠다. 근데 상영 기회가 끝나서 어쩐다.. 드라마 <늑대>를 3화까지 재밌게 본 팬이 영영 4화를 만날 수 없는 기분이 이랬을까.



<라 플로르> Part1 의 스틸 사진. (출처: 다음영화)



영화의 재미에 대해 아주 오랜만에 느낀 시간이었다. <라 플로르>가 분류될 만한 '예술영화' '실험영화' 하면 보통 '재미없음' 을 생각한다. 영화를 본 사람 조차도 재밌었냐는 질문에 '재미로 보는 건 아니지' 라 답하곤 한다. 하지만 재미란 주관적인 것이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재미의 가장 큰 요인이다. 그렇다면 과연? <라 플로르>의 재미가 근래의 '오락영화' '대중영화' 에 속할 만한 영화들보다 부족했을까? 아니.


<시동>을 보면서 택일 엄마네 가게가 철거될까 노심초사하게 되던가? 이번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마지막 결투 신에서 우주의 미래가 걱정되며 손에 땀이 쥐어지던가? 객석에 감정이 전이되지 못하면 다 무슨 소용인가. 더군다나 스스로 '오락영화' 라 칭하는 영화가 오락적이지 않다면, 그 영화의 미덕은 어디에 있을까. (두 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는 아닐 텐데 최근 본 '그런' 영화가 그 둘이라..)


하나. '예술영화' '실험영화' 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둘. 요즘 대다수의 '오락영화' 는 '예술영화' '실험영화' 보다도 재미없다는 것. 영화의 재미에 대한 시선을 유연하게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왜냐면 재미없는 영화가 잘 되는 건 별로거든. 낯선 플롯, 낯선 풍경, 낯선 배우를 낯설어 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보면 거기에 재미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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