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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y 07. 2021

여기가 있어 다행이라는 말

작은 영화관 매니저의 일기 03




코로나가 시작되고 관객이 폭삭 줄었다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가 다시 파리 날리기를 지루하게 반복한지 1년 즈음이 되었던 어느 날. 관객이 적어도 많아도 별 생각이 들지 않는 무기력하던 때. 자주 와서 얼굴이 익은 한 관객 분이 여느 때처럼 예매한 표를 찾다가 말을 건넸다. "여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네?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되물었다. 코로나로 인해 답답해 죽겠는 와중에 여기서 영화를 보는 일이 숨통을 트이게 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렇게 잘 정리된 답변이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되물어 놓고도 금세 이 분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몸을 바로 세우게 됐다. 내가 무기력한 태도로 있었다는 걸 인지하게 됐고, 반성하게 됐고, 정신 차리게 됐다. '이곳을 이렇게 필요로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열심히 일해야지'



이곳에서 처음 근무할 때 단골이 많은 게 되게 신기했었다. 어느 곳에나 단골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관은 하루 관객의 50% 이상이 단골인 수준이었다. 작은 영화관 치고 관객이 적은 편도 아니라, 단골의 절대 수 자체가 정말 많았다.


서울에 살 때 이 동네 저 동네 다양한 영화관을 돌아다녔던 나는 같은 손님이 주마다 오고 또 오는 이 풍경이 생경했다. 물론 나도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관이 있긴 했지만 막상 예매를 할 때는 지금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곳, 시간 맞는 회차가 있는 곳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니 조건을 재지 않고 무조건 이곳으로 오는 듯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매 주말 한곳에 간다는 것도 신기했다. (내가 일하는 영화관은 주말에만 상영을 한다.) 이번 주말엔 좀 다른 곳에 가보고 싶지 않을까? 이렇게 자주 오면 질리지 않나? 고마우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골 손님들에게 신기한 눈빛을 거두기 시작한 건 내가 이곳에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이곳이 편해지자 이곳을 편하게 여기는 단골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험보다는 안락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약속된 공간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지하에 자랑할 만큼 좋은 시설을 갖춘 영화관이 있고, 1층에 비싼 원두로 내린 커피를 혜자스럽게 파는 카페가 있다. 단골들에게 이곳은 주말이면 불을 밝혀 좋은 영화를 틀어주고,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 집만큼 편안하지만 집에는 없는 시설과 서비스가 있는 공간인 것이다. 대단한 사치는 아니지만 원한다면 스스로 대접받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침에 와서 그날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모두 예매하는 손님도 있다. 기억하는 손님은 대부분 혼자 온 중년 여성분이었다. 우리 엄마는 두 시간 동안 영화관에 '갇혀' 있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젊었을 때부터 엄청난 시네필이었겠지? 아니,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생긴 시간을 채우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걸까? 이런 괜한 상상도 해보곤 한다.


이런 단골들에겐 고마움을 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고르지 않고 모든 프로그램을 보는 행위가 이곳을 무한 신뢰한다는 뜻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곳에서 상영한다니까 믿고 보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입장에서 뿌듯하면서도 조금 긴장되는 순간이다.



요즘같이 힘든 때,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용은 늘어나고 매출은 반토막이 나고 그런 와중에 문화와 트렌드는 세상에 나름 적응을 하려 계속 바뀌어서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해도 극장 상황이 회복이 될 수 있을까 불안하고....... 물론 머리에 이런 생각을 오래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힘차게 출근을 했다가도 휑한 로비의 광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축 처진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영화관과 카페 지원을 오가며 전천후란 별명까지 얻었던 때가 그리워진다. 사실 이건 나란 사람이 겪는 힘듦이라기 보다는, 이 공간에 찾아온 외로움을 내가 대신 겪고 있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그때 들은 여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은 얼음물 세례를 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아, 그렇지. 진짜 힘든 건 영화관이 아니라 사람들이지. 영화관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있구나. 영화관이 포기하고 지치면 안 되겠구나. 내가 정말 영화관이 되기라도 한 듯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영화관이 문을 닫아야 할 만큼 힘들어지면 모금 운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이곳이 없어지면 슬플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 도와주겠지! 하는 엉뚱하고 거만한 상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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