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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Sep 22. 2023

새벽 세시

새벽에 자꾸 깬다. 초저녁이 되면 무릎도 아프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서둘러 둘째를 재우며 같이 잔다. 그러다가 어슴푸레 잠에서 깨서 시계를 보면 새벽 2~3시경. 고요하고 어두운 방에 누워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 순간이 꿈인 듯. 나는 죽어있는 건가 살아있는 건가. 죽는다는 건 자는 것 같은 걸까.


낮에 고민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심각하게 다가온다. 숙제를 안 하는 아이에게 화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몽글몽글 느껴진다. 엎드려 자고 있는 내 얼굴에 눌려져 생긴 팔자주름과 미간주름이 느껴진다. 이대로 더욱 깊게 계속 자리 잡을까 두렵다. 둘째 아이가 식탁 의자를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바꿔줘야겠다. 허리가 다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더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깬다.


새벽에 일어나 좋은 점은 활용할 수 있는 보너스 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깨지 않을 때는 하루 10시간씩도 자니 잠으로 꽉 채운 내 하루가 아깝다. 고민했던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식탁의자를 주문한다. 가격비교를 위해 여러 사이트를 돌고 쿠폰도 먹여보며 구매를 완료했다. 사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집을 채운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처분 리스트를 적어본다.


보통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새벽이 온다.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들이 있지만 뭔가 한꺼번에 들어온 많은 정보들은 내 안에 축적되지 않고 빠르게 잊힌다.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점점 적어진다. 책과 글은 고요함 속에 깊은 교감을 하는 작업이라면 영상과 인터넷 자료들은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며 보는 바깥 풍경 같다. 빠르게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지나간다. 그들의 속도가 빠른 건지 내 속도가 빠른 건지는 분명치 않다. 많은 생각은 다른 많은 정보들로 지울 수 있으나 허망하다. 나와의 시간을 갖고 많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편이 풍요롭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 고양이의 이름은 뮤. 새벽에 깨서 부스스 거실로 나오면 12년 된 뽀로로 매트 위에 누워 있다. 보통 고양이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데 뮤는 왜 바닥에 누워 있는지 모르겠다. 불을 켜려면 그 매트를 지나쳐야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혹시나 뮤를 밟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기척도 없이 녀석은 자리를 지킨다. 설마 나를 밟으랴 하는 나에 대한 믿음일까. 불 좀 어둡다고 날 못 보겠느냐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일까. 다른 가족들이 잠든 고요한 밤에 깨어있는 것은 즐겁고도 외롭다. 그런 새벽녘 내 옆에 뮤가 있어 좋다.


이렇게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면 좋겠지만 새벽 5시 반쯤 되면 또 피곤해진다. 남편이 출근을 위해 일어날 시간. 그는 참 대단하다. 자기가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느낌이다. 새벽에 축구 경기가 있으면 초저녁부터 잠을 자고, 새벽에 정해놓은 시간에 벌떡 잘 일어 난다. 잠 조절이 쉽지 않은 나이기에 칼 같은 그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다시 잠을 청해야겠다. 선물처럼 주어진 소중했던 새벽 3시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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