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보자
그녀는 내게 글을 쓰라고 했다.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무슨 글이든 일단 쓰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일 거라고.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얼마 전 취업을 했다. 아이가 있어 풀타임은 어렵고 9시부터 3시까지 일 할 수 있는 내게 최적의 위치와 시간대의 일자리였다. 회사엔 대표님 한 분 그리고 다음 달에 퇴사할 전임자 한 분 이렇게 두 명뿐이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젊고 새로운 이미지의 유명 IT회사. 6년을 재직하고 퇴사하던 날. 나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열심히 살아왔던 나의 커리어가 끝나가는 게 서러웠다. 그리고 그 길이 정말 풀타임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으로는 마지막 날이었다.
퇴사의 이유는 육아였다. 결혼 이년만에 귀엽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돌이 되기 전에 복직을 했다. 아침엔 어린이집을 보내고 저녁엔 아이돌보미를 고용해서 아이를 맡겼다. 항상 붙어있던 엄마가 자고 나서야 오는 그 이유를 아이는 알았을까? 자다 깨서 날 쳐다보는 아이의 눈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어린이집에 다닌 후 아이는 몇 달째 중이염이 낫질 않았고 찾아간 대학 병원에서는 한두 달 더 지켜보고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너무 어렸을 때 어린이집을 보낸 걸까… 의사 선생님은 단체 보육이 아닌 집에서 양육하기를 권했다.
조금만 버티면 나을 수도 있잖아. 지금 직장에 얼마나 어렵게 들어오고 힘들게 버텼는데 그만둘 수는 없어. 나는 다짐했다.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그 무렵 아이는 소리 나는 장난감과 책을 무척 좋아했다.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책을 수도 없이 누르며 라디오처럼 사용했다. 문 열리면 소리가 나고 돌리면 음악이 나오던 장난감은 왜 국민장난감이라는지 알 수 있었다. 음악에 맞춰 덩실거리는 귀여운 아이의 몸짓은 사랑스러웠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있는 사운드책이 다 꺼져있었다. 장난감도 마찬가지. 이게 왜 꺼져 있지? 다시 켜놓았다. 그 뒤로도 소리 나는 책과 장난감은 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싸한 느낌.
하루는 아이의 입술에 검붉은 멍이 생겼다. 이유식을 데우는 중 아이가 넘어졌단다. 여태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런 일이 생긴 게 의아했지만 아이는 말을 못 하고 우리 집엔 cctv 가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건. 내가 복직하고 삼주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은 남편이 먼저 퇴근을 하고 집에 갔다. 아이 돌보미 선생님은 아이를 안은채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를 넘기며 그분은 뭘 싼 거 같으니 기저귀를 확인하라고 하며 바로 퇴근했다. 집에 들어가서 열어본 기저귀에는 싼 지 아주 오래된듯한 똥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허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바로 아이 돌보미 선생님께 그만 오시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잠시 올라오셨고 아이의 돌잔치 때 나의 퇴사 이야기가 양가 부모님 사이에게 오갔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하게 됐다.
그 좋은 회사와 일자리를 그만두고 나오다니 다시 돌아가면 퇴사하지 않으리라 생각도 자주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너무 여러 가지 일들이 아이에게 있었고. 그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매개체가 나인데 무책임하게 아이를 방치할 순 없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도 너무나 소중한 것을. 아까운 내 삶.
그렇게 끊어져 버린 나의 커리어는 시간제 또는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커리어를 연명을 하고 있다. 다른 환경, 낮은 급여 속에서도 일하는 즐거움은 나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열심히 일하고 일하는 즐거움에 재밌게 일하는 나이지만 어떻게든 나의 노동력을 쥐어짜겠다는 회사 대표의 태도는 나를 지치게 한다. 계속 일을 해야겠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나는 물음표를 나에게 던졌다.
이 주만에 본 그녀는 더욱 예뻐진 모습이었다. 아이라이너를 했을 때 훨씬 세련되고 멋져 보인다. 그녀는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한 달 동안 같인 일했던 전임자. 그녀는 배우는 것을 기뻐하고 열정적이며 마음이 젊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온라인에서 상담을 하는 그녀는 그 분야에서 꽤 인정받고 유명했다. 부업이지만 본업 같은.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그녀는 내게 글을 써보라고 했다. 접어 두었던 나의 글쓰기. 목적 없이 쓰는 글쓰기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직업이 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될 수 있다고 했다. 꿈은 길을 만들어서 우리를 인도한다고.
그래 목적이 없으면 어떠한가. 글을 쓰는 것 자체로도 생각이 정리되고 내 삶은 변화된다. 소모적이라고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글을 써보자. 나의 이야기. 나의 관심사와 요즘 생각들. 최저시급 노동자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될 것 같고, 된듯하다. 나의 글을 써보자. 내 인생의 또 다른 장이 시작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