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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Jan 23. 2024

화장하지 않는 여자

영어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오후 6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은 선크림도 비비크림도 바르지 않았다. 피부가 좋은 것도 아닌데 무슨 배짱인가? 게으름과 귀찮음의 결과인가.


전에 누군가 물었다. 왜 화장을 하지 않느냐고. 나는 비비크림은 바른 거라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비비크림조차 바르지 않았던 날들도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화장은 아름다워지기 위함이 아니라 최소한의 추함을 가리는 일이랄까. 나의 추함을 가리는데 나는 게을렀다.


젊었을 때부터 화장을 하지 않아서 화장을 잘할 줄 모른다. 그래도 관심은 있어서 유튜브에서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화장법 동영상을 종종 챙겨본다. 화장을 할 것도 아닌데 그건 왜 보냐고 남편이 묻는다. 나도 화장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변신 전 후가 마법처럼 눈부신 그녀들의 화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 하기엔 나에겐 비슷한 화장품도, 도구도 없다. 립스틱은 많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화장 좀 하라는 의미인지 립스틱 선물을 많이 받는다. 입술색과 유사한 은은한 색의 립스틱들. 모두 한두 번 바른 채로 서랍 안에 있다. 립스틱을 선물한 사람과 립스틱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여행을 가면 화장을 하게 된다. 사진도 많이 찍고 하루가 꽉 차게 특별한 나날이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면 나는 예뻐진 것 같다. 화장이래야 비비크림에 볼터치, 립스틱만 했을 뿐인데도. 조금은 귀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상점을 가든 식당을 가든 좀 더 정중하고 우아한 모습이 된다. 나는 원래 우아한 사람이란 듯이,


일상에서 나의 떡지고 부스스 하늘을 향해 솟은 머리는 거지 같다. 선크림은 잊지 않고 바르려고 하지만 일분일초가 아쉽다. 나는 느긋하고 잠이 많은 사람이기에 나의 하루는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예쁘고 우아하게 살고 싶은 마음. 소중한 내가 되어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 바쁘고 정신없는 매일이지만 나를 챙기고 나를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문득 거울 속의 내가 처량 맞다.


예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짬을 내서 씻고 화장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추함을 가리는 일을 하는 시간이 아닌 나를 더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내가 더 아름답고 기분 좋아질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하고 토닥이는 시간.


둘째 나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투자하기. 좋은 화장품을 사고, 질 좋은 옷을 사는데 주저하지 말자. 좋은 물건엔 그만큼의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 싸게 더 좋은 것을 얻으려는 마음은 횡재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  


셋째 나를 사랑하기. 내가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얼마나 훌륭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나를 인정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해 주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엇이라 평하기 전에 내가 나에 대해 확고하면서 후한 평가 하기.


신기한 일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글을 쓰면 정리가 된다. 나는 다 알고 있지만 정리가 안 됐을 뿐인 건가. 나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존경받는 엄마이고 사랑스러운 아내이고 훌륭한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내일부터 나는 화장을 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소중한 만큼 토닥토닥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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