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자주 꿨다. 건물에서 떨어지고, 쫓기고, 소중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는 기괴한 꿈들. 차갑게 나를 외면하는 사람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중요한 순간에 모두 나를 배신하고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유년, 초중고, 대학교와 직장생활 등 모든 꿈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런데 그녀 만큼은 꿈에서 조차 그러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깊은 믿음. 내 마음속 그녀는 유일한 친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시절. 보통 키순서대로 앉았는데 그녀와 나는 키가 커서 자주 짝꿍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못나고 어두운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몰랐다.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말들이 친구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혼자인 건 싫었지만 마음 맞는 친구가 없었다. 누군가를 사귀는 게 서툴고 불편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떨 때는 장난도 치고, 어떨 때는 진지한 고민들로 나에게 친구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집에 놀러 갔을 때 처음으로 나에게 밥을 해주었던 친구. 떡볶이와 볶음밥을 뚝딱 요리해서 그릇에 담아 그녀와 함께 나눠 먹던 그날이 기억난다. 잘 정돈된 그녀의 방과 깨끗한 집. 훌륭한 요리 실력을 갖춘 그녀는 안 보고도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었다. 그녀가 아파 병문안을 갔을 때 아픈 그녀를 두고도 심하게 장난치는 그녀의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성격 좋고 따뜻한 아이를 만든 걸까.
처음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그녀는 내 남자친구에게 줄 밸런타인데이 바구니를 직접 꾸며서 줬다. 암에 걸린 우리 엄마 병문안을 왔고 친구 초대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와주었다. 내 결혼식 때도 짐을 들어준다고 먼저 와서 도우미가 되어 주었던 그녀. 기쁜 일엔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땐 함께 슬픔을 나눠줬던 고마운 사람이다.
그녀에겐 친구가 많고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그녀의 많은 친구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가 나는 내 마음속 가장 편안하고 좋아하는 친구다. 나의 학창 시절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지 않게 해 주었던 시기가 그녀와 함께했던 시절이다.
성인이 된 지금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 그녀. 그녀로 인해 나도 어쩌면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슬플 땐 그녀와 내 삶을 공유하며 일어설 힘을 얻기도 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나와 친구가 되어줘서, 아니 태어나줘서 고마워. 외로움이란 고통 속에서 구원해 줘서 고마워. 나도 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