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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May 25. 2023

십 년 넘게 살림했지만 초보입니다

바깥바람은 차갑고 상쾌했다. 북엇국과 육개장 그리고 반찬 몇 가지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비릿한 생선 냄새. 저녁식사를 위해 내가 만든 고등어조림 냄새다. 그렇다. 지금 난 망쳐버린 고등어조림을 뒤로하고 반찬가게에 다녀오는 길이다. 남편은 퇴근하여 이미 씻고 있는데 고등어조림은 도저히 내놓을 수가 없었다.


고등어조림 조리법을 처음 봤을 땐 정말 쉬워 보였다. 이렇게 쉽다니 왜 여태 안 만들어 봤을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보였다. 집에 있는 건 생물고등어가 아니라 반으로 가른 간고등어뿐이었다. 또 아이들과 먹어야 하니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최소한으로 써야 한다. 생강도 없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처음 만든 고등어조림. 정말 비위가 상하는 냄새와 생김새였다.


부끄럽지만 나는 살림 초보이다. 결혼 후 십 년 넘게(정확하겐 십사 년이지만 부끄러우니 십 년 넘게로 하자) 살림을 해 왔지만 여전히 서툴다.




그전까지는 맞벌이라는 이름으로 서툴고 부족한 살림 실력이 용납이 됐다. 이제 난 전업 주부이다. 세월에 비해 부족한 살림 실력은 너무 부끄럽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리 정돈이다. 이 집에 이사한 지 8년이 넘었는데 갈수록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식탁 위와 탁자 위는 항상 책과 여러 잡동사니들로 수북하다. 혼돈의 수납장에서 냄비나 양념, 장롱에서 옷과 이불을 꺼낼 땐 마음이 갑갑하다. 이걸 또 언제 정리하나. 마음먹고 정리해도 한두 달이면 원상 복귀되는 마법.


손님이 오는 날은 대청소하는 날이다. 우당탕탕 시끄럽고 분주하다. 청소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몸이 힘들다. 손님맞이용 청소는 정리라고 보기보다는 물건을 보이지 않는 곳에다가 치운다는 의미가 맞겠다. 언발에 오줌누기 청소법이랄까. 상황이 이러니 누군가 갑자기 집에 오는 일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우리 집에 가서 놀자는 말은 나도 우리 아이들도 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은 나보다 살림 실력이 낫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는 않지만 훌륭한 맛을 내는 대여섯 가지의 요리들. 주 일회 화장실 청소는 신혼부터 남편의 담당이었다. 설거지도 그가 하면 어찌나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지. 여러모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남편이다.


무엇이 나를 살림 낙제생으로 만든 것일까. 타고난 성실함과 열정으로 어딜 가든 모범생이지만 살림만큼은 다 아는걸 나만 모르는 낙제생 같다. 부끄럽지만 내가 왜 이렇게 까지 살림을 못하는지에 대한 변명 또는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관심사가 많다. 요즘은 글쓰기, 영화영어,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다. 작가와 영어 능통자, 필라테스 강사를 꿈꾸어보기도 한다. 발레도 배우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어 부동산과 주식에도 관심이 많으며. 거기에 책욕심은 많아서 이 책 저 책 많이 빌리다 보니 집에 책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둘째, 못 버린다. 버리자고 마음먹고 옷장이며 서랍을 뒤져도 막상 버려지는 건 조금이다. 남을 줄 수도 없는 가치가 없는 것들 인데도 이 미련한 궁상을 쪄먹고 싶다. 잘 안 버리는데 버리면 나중에 꼭 필요한 상황도 아이러니.


셋째, 유전이다. 양가 어머니들을 보면 우리가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집과 신선한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하는 시어머니. 그에 반해 친정집은 방 4개가 있는 큰집이지만 방 3개는 창고가 되어 있는 듯하다. 냉장고와 냉동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로 포화상태이다.


등등 변명 같은 이유들은 많지만 우선은 위에 분석한 세 가지 이유들 만이라도 내 삶에 적용해 봐야겠다. 관심사를 줄이고, 안 쓰는 물건 버리기!  다시 태어나기(웅?).




살림을 잘하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다소 느리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하며, 잠도 많고 신체를 써야 하는 단순 반복 일을 싫어하는 나에는 결코 쉽지 않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살림을 잘하게 된다면,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서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때나 아이들 친구나 이웃이 우리 집을 방문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상태면 정말 좋겠다.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과 실제의 괴리는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나는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하는 몽상가(Dreamer)일까? 아님 꿈을 꾸고 이루어가는 드림 캐쳐(Dream catcher)일까? 부디 드림 캐처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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