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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지 666일

어중간한 사람과 시시한 사람의 연애

어느날 그가 문득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어릴 때 어중간한 사람이었어. 

시골이라 할일이 없어서 

동네 노는 애들이랑 어울려다녔는데 

제대로 놀아볼까 싶다가도

엄마한테 혼날까봐 무서워서 잘 못놀았어.

주말에 애들은 월미도 같은 데 우르르 가서 

커플이 막 되서 오는데 난 혼날까봐 못갔어.

그래서 고등학교 때 연애를 못했나봐.

아빠가 교회 부목사님이셨는데 교회 목사님은

내가 껄렁껄렁 하다고 못마땅해하셨어.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도 아니고

그냥 그런 어중간한 사람이었던거 같아."


뭔가 화답을 해야할 거 같아서 나도 곰곰이 내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내 첫사랑은 교회 오빠였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찬송 시간 리드하는 그런 오빠.

지금 생각하면 전혀 내 타입이 아닌데..."


"그때는 그런 오빠들이 인기가 많았어."


"나는 그냥 시시한 사람이었어.

이름까지 평범하고 시시해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자꾸 틀리게 불렀어.

나는 소심해서 "제 이름은 그게 아닌데요"라고 말도 못했어.

우리 오빠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는데 

나는 성적도 보통이고 잘하는 것도 딱히 없었어.

동네도 시시하기 짝이 없는 촌구석이라서 

책 보는 거 밖에 할일이 없었어. 

영웅문, 녹정기, 은하영웅전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길수록 좋았지.

연애는 만화책을 보고 배웠어.

대학에 가서 안경을 벗고 교복 대신 어른스러운

옷을 입으면 만화에서처럼 짠 하고 '대변신 성공!' 해서 

안 시시해지는 줄 알았는데 계속 시시한 사람이었어.

여전히 사람들은 내 이름을 자꾸 틀리게 부르고 말야."


그렇게 어중간한 사람과 시시한 사람이 만나

어쩐 일인지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단 하나의 특별한 사람이 된 지

666일이 되었다.     


"그거 알어? 오늘 우리 666일이다."

"야, 소름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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