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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게스트하우스 호스트를 꿈꾸는 이유

히비키를 따라준 재일 교포 호스트와의 만남

나는 여행을 하며 큰 호텔보다는 작은 숙소나 게스트하우스를 주로 찾곤 한다. 그곳에서 만난 호스트들과의 인연으로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한다면 어떨까 하는 꿈을 품게 되었다.  

처음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구한 건 7-8년 전쯤 도쿄 여행에서였다. 숙소가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있어서 나는 일정을 일찍 끝내고 들어가 쉬기로 했다. 안내받은 대로 셀프 체크인을 하고 인테리어 잡지에 소개되었다는 일본 전통 양식에 모던함이 가미된 거실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호스트가 귀가했다. 서퍼를 연상시키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몸을 가진 그는 놀랍게도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고, 사실 자신의 부모님이 북한 출신이라고 했다.

한국, 북한, 일본 중 자신의 국적을 선택해야 했을 때, 일본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북한을 고르면 살면서 어려움이 따를 것 같고, 일본인이 되면 부모님께서 서운하실 것 같아서 고심 끝에 한국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모자 수출입 사업을 하며 저녁에는 바텐더로 일한다고 했다. 내가 술을 꽤 즐긴다고 하자 그는 찬장에서 이런저런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회식 때 종종 조니 워커에 콜라를 타서 홀짝거리던 내게 위스키는 그저 독한 술일뿐이었지만 그가 내어준 일본 위스키는 달랐다. 호기심을 느껴 이것 저것 맛 보며 위스키의 매력에 눈떴다. 그날 마신 히비키를 비롯한 일본 위스키 몇 잔이 내 숙박비를 한참 초과했다는 건 먼 훗날에야 알았다.

나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그를 부러워했다. 태생적으로 비극을 품은 그의 삶은 퍽 문학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비극의 일부이고 나는 문학의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에 불과했다. 막연히 작가의 꿈을 품은 적도 있지만 대학에 와서 곧 깨달았다.

수수께끼 같은 은유도 불길한 복선도 없는 나의 삶은 시나 소설이 될 수 없으리란 걸.

비극을 타고난 사람 앞에서 나의 우울은 그럴싸하게 흉내 낸 모조품 브로치에 불과해 보였다. 어디서 훔쳐 온 장물 같은 문장만 쓰는 내게 백지를 마주하는 건 평범을 자백하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치열하게 평범한 삶을 좇는 이도 있겠지만, 내겐 풀 수 없는 저주였다. 아무거나 골라 잡아도 그만인 네 캔에 만 원 맥주 같은 삶인 채 유서 깊은 스코틀랜드 양조장에서 숙성된 싱글몰트 위스키처럼 그 향만으로 전율을 주는 이를 막연히 선망했다.

내가 여행을 하고 가끔 분수에 맞지 않은 것들을 누리려는 이유는 진저리나는 평범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닐까. 세상을 쏘다니다 보면 적어도 귀한 것을 알아보고, 밝아진 눈으로 슬픔을 지닌 이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겟지. 그러나 진귀한 것을 모아두었다는 박물관, 아름다움의 정수가 있다는 미술관, 수천 년 역사를 품었다는 명소를 다녀도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단서조차 없었다. 하지만 우연한 술자리에서 내 인생의 항로는 여러 번 수정되었다.

인간이야말로 복제할 수 없는 영혼을 가진 고유의 것이기에.

알코올 기운에 단단하던 영혼의 가장자리가 슬며시 흐릿해지고 스며나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남몰래 그의 슬픔과 좌절을 한 모금 삼킨다. 그 이야기는 쓰고 달다. 그런 여정을 마치면 나의 삶이 시나 소설이 되지 못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내게는 평생 음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남았기에. 하지만 밤이 찾아오듯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불현듯 나를 덮치고 또다시 그런 순간을 기다린다. 참 지독한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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