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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쌓아올린 세계가 나를 위협할 때


요즘 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열기 위해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은 건물을 고치고 있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땐 도배며 장판을 막 새로 해 얼핏 깔끔해 보였지만, 거실 천장 한 부분이 크게 젖어있는데다 퀴퀴한 냄새도 불길했다.

“올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외벽에서 누수가 있는 모양이에요. 집 주인분이 곧 수리하고 도배도 다시 하실 겁니다.” 부동산 아저씨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수십 년 자취 경력으로 집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공기만으로 눈치챘지만, 나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했다. 드물게 게스트하우스를 해도 좋다고 집 주인이 허락한 매물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이 눌어붙은 화장실과 주방은 다시 손봐야 해서 비용이 꽤 들겠지만, 좋아하는 동네에 뻔하지 않은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빨리 공간을 찾아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컸다. 하룻밤을 고민하고 가계약금을 보냈다.

부동산에서 외벽 방수 공사가 끝나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해도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철거 일정을 잡고 공사일에 현장을 찾았는데 녹물이 거실 벽면을 타고 흘러 바닥에 큼직한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싱크대 상부장을 떼니 축축하게 젖은 천장이 내려앉았다. 분명 방수공사를 끝냈다고 했는데... 이쯤 되자 나는 계약을 없던 일로 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집 주인과 그를 깍듯이 모시는 부동산 실장이 달려와 현장을 보고는 다른 설비업체를 불렀고, 보일러 관이 너무 오래되어 부식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이 떨어졌다. 구두쇠처럼 보이던 건물주 할아버지는 의외로 화끈했다. 물이 새는 곳만 수리를 하면 어차피 다른 관도 낡아서 여기 저기 누수가 생길 거라는 설비업체 사장님의 말에 수긍해 바닥과 천장을 모두 철거하고 보일러관을 다시 까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계획한 인테리어 공사도 한참 미뤄지게 되었지만 오픈 뒤에 문제가 터지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뒤 콘크리트 덩어리가 나뒹구는 폐허가 된 집을 찾았을 때, 문득 이 집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처여야 할 집에 물이 새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 골치를 썩이고, 더위와 추위를 막아내지 못할 때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듯 내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세계가 도리어 나를 위협하고 있는데, 문제를 방치하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훌훌 떠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십 대 때는 눈앞에 문제가 선명히 보이는 만큼 이를 극복하려는 에너지도 크고, 취업이나 연애 같은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삶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도 있다(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하지만 나이가 들어 쌓아올린 세상이 제법 두터워진 후에는 욕망이란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누수의 원인이 바깥에서 들이치는 빗물인지 안에서 망가진 배관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듯 내 문제가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물 새는 곳을 얼렁뚱땅 틀어막고 새하얀 도배지 한 장 발라 놓는다고 문제가 끝날리도 없다. 근원을 파악해 해결하지 않는 한 천장 위로 검푸른 곰팡이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을 곧 보게 될 테니까.

낡다못해 검게 녹슨 보일러관이 모습을 드러낸 폐허 위에 서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15년간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며 여러 번 이직을 했으니 퇴사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사실 지금 회사를 그만두겠다 마음 먹은지는 꽤 되었는데, 이번에 나가면 다시는 직장에 몸담지 않을 작정이었기에 차일피일 미루던 차였다. 퇴사이자 직장인으로서의 퇴직, 편집자로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 망설임도 길었다. 더 이상 책을 만들지 않는 나를 스스로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월급을 진통제 삼아 버텼지만, 이제는 내게 새로운 세계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믿고 싶다. 스스로를 붕괴시킬 힘과 그 폐허로부터 나의 세계를 다시 쌓아 올릴 힘이 내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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